이재명 대통령 "국민 댓글 하나 놓치지 않아요!"
2025-06-09 10:26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카메라를 추가 설치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우연히 댓글을 통해 접한 제안이 의미 있다고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고 직접 밝혔다. 이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고 국정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소통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오후 자신의 소셜미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국민 여러분께서 남겨주시는 다양한 의견에는 현장감 있는 아이디어와 실질적 개선책이 많아 늘 귀 기울이며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참신하고 유익한 의견을 주시면 앞으로도 적극 검토해 반영하겠다. 고맙다"며 국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브리핑룸 시스템 개선은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 구체화됐다. 강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국민과의 소통과 경청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철학에 발맞춰 대통령실 브리핑룸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한다"며 "대통령과 언론과의 소통 현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 4대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특히 "대통령실 대변인과 관계자들만 비추던 기존의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기자 여러분이 질의하는 모습과 현장 상황을 쌍방향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브리핑 현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소통의 진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은 앞서 온라인상에서 질문하는 기자와 답변하는 정부 관계자의 모습을 함께 생중계하는 미국 백악관 브리핑 방식의 게시물이 화제가 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바 있다.
대통령실은 계약 발주와 카메라 설치 작업을 거쳐 6월 중순 이후 새로운 브리핑 시스템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변화가 대통령실과 언론, 그리고 국민 간의 소통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