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보이면 수갑, 공개하면 파행… 국감이 예능을 이겼다

2025-10-15 11:04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의 체포 과정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밉보이면 이렇게 되나 싶었다”고 규정하며 현 정부를 “비상식이 뉴노멀”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일 경찰에 체포됐다가 법원의 체포적부심 인용으로 이틀 만에 석방된 그는 “면직 이틀 뒤, 정확히는 하루 만에 수갑을 채워 압송당한 건 상상 밖이었다”며 “권력이 주는 메시지는 명백했다”고 주장했다. 특검 조사 후 숨진 양평군 공무원 사례를 언급하며 “강압적 조사 환경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 부부의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을 겨냥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저는 방통위 여름휴가를 절차대로 신청했는데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이 ‘재난 중 휴가 신청’이라며 반려했다고 브리핑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과방위 국감은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욕설 문자 공개로 파행을 빚었다. 김 의원이 “에휴 이 찌질한 놈아”라는 문자를 공개하자 박 의원은 “개인적으로 보낸 걸 여기서 공개하나. 너 나가”라며 고성을 질렀다. 공개 화면에 박 의원의 전화번호까지 노출되자 국민의힘은 “강성 지지층이 좌표를 찍었을 것”이라며 반발했고, 최민희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했지만 회의장은 한동안 아수라장이 됐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김 의원이 회의장에 전화를 하며 들어와 나가라 하자 욕하며 멱살을 잡았다. 다음 날 가족 관련 영상을 틀어 모욕감을 느껴 밤에 문자를 보냈고, 김 의원도 욕설로 답장했다”고 주장했다. 국감 재개 후 최 위원장이 박 의원 퇴장을 명령하자 국민의힘은 “응할 이유가 없다”며 버텼고 소란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김 의원의 개인정보 공개를 문제 삼아 형사 고발과 국회 윤리위 제소 방침을 밝혔다.

 

이날 국감은 권력형 수사 공정성, 공직 윤리, 개인정보 보호와 품위 유지 의무 등 중대한 의제보다 정쟁과 막말이 의사 진행을 잠식했다. 핵심 증인 발언은 파편화됐고, 제도 개선 논의는 공회전에 그쳤다. 피해 최소화를 위한 수사 절차 투명화, 증거기반 조사 원칙 강화, 개인정보 비공개 관행 확립 등 실질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물, 바람, 땅…자연의 모든 것을 담았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한국무용 완전 정복

종합선물세트'라는 윤혜정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역사를 지닌 8개의 전통 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개념인 '미메시스', 즉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의 춤은 물의 흐름(교방무), 바람의 형상(한량무), 땅의 기운(소고춤) 등 자연의 본질적인 요소를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춤사위를 넘어,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해 온 우리 전통과 민속의 깊은 뿌리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엄선된 7개의 춤에 마지막으로 살풀이춤을 더해 완성된 8개의 레퍼토리는 한국 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를 증명한다.'미메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처럼 관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춤을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첫 장을 여는 교방무가 기생들의 유려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물의 흐름을 그려낸다면, 곧이어 펼쳐지는 한량무는 불었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태평소 가락과 어우러져 폭발적인 흥을 분출하는 소고춤의 역동성은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승무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처럼 정적인 여백의 미와 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은 한국 무용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마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각 춤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개 중 6개의 음악을 새로 작곡한 유인상 음악감독의 미니멀한 접근 방식 또한 춤 본연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번 공연은 시각적인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았다. 김지원 의상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의 '하후상박(上薄下豊)' 실루엣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무대 의상을 완성했다. 특히 한량무에서는 K팝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의상에 전통 갓의 챙을 유난히 넓게 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버선발의 섬세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속치마를 시스루 소재로 만들거나 무릎, 뒤꿈치를 과감히 노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전통을 어느 선까지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각 춤의 특징을 살린 의상은 무용수들의 몸짓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미메시스'는 스타 무용수의 참여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현대무용가 기무간이 서울시무용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검무와 태평무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국 무용은 정서적으로 깊은 내면을 다루며,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멈춤의 미학'이 있는 춤"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공연을 통해 현대 무용과 한국 무용의 본질적인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너지를 채워서 밖으로 분출하는 현대 무용과 달리, 무용수가 감정을 비워낸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무용의 정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메시스'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현대적인 해석과 스타 무용수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의미 있는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