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용 기름’ 누명 썼던 그 라면, 36년 만에 재출시…당신은 사 드시겠습니까?

2025-11-03 17:57

 삼양식품이 36년 만에 ‘우지(소기름)’를 사용한 라면을 다시 선보이며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브랜드의 새로운 미래를 선언했다. 삼양식품은 1989년 ‘우지 파동’이 발생한 지 정확히 36년이 되는 11월 3일, 서울 중구에서 신제품 ‘삼양1963’ 출시 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한국 최초의 라면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던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을 보고 라면 개발을 결심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브랜드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번 신제품 출시는 삼양식품에 깊은 상흔을 남긴 1989년 ‘우지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삼양라면이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후 보건사회부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공식 발표하며 논란은 종식되었지만, 한번 무너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웠고 시장 점유율은 급락했다. 이 사건 이후 삼양식품은 라면의 핵심 원료였던 우지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팜유로 대체해왔다. 36년 만에 다시 우지를 꺼내든 것은 과거의 오명을 씻고, 우지가 삼양라면 본연의 맛을 완성하는 핵심 재료였음을 당당하게 알리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36년 만에 돌아온 ‘삼양1963’은 과거의 맛을 단순히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기술을 더한 프리미엄 미식 라면으로 재탄생했다. 가장 큰 특징은 동물성 기름인 우지와 식물성 기름인 팜유를 최적의 비율로 혼합하여 면을 튀겨, 과거 라면의 고소한 풍미와 감칠맛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또한, 면에서 우러나오는 우지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사골육수 기반의 액상수프를 적용했으며, 무와 대파, 청양고추를 더해 깔끔하면서도 얼큰한 국물 맛을 완성했다. 후레이크 역시 큼직한 단배추, 대파, 홍고추를 동결건조 후 후첨 방식으로 제공해 원재료의 신선한 맛과 식감을 그대로 살렸다.

 

삼양식품은 이번 신제품을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닌, 미래를 향한 혁신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정수 부회장은 발표회에서 “우지는 삼양라면의 풍미를 완성하던 진심의 재료이자 정직의 상징”이었다고 강조하며, “‘삼양1963’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이는 불닭볶음면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위상을 높인 삼양식품이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브랜드의 뿌리를 되짚어 새로운 혁신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다. 36년의 한을 딛고 돌아온 우지 라면이 국내 라면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이준 기자 yijun_i@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물, 바람, 땅…자연의 모든 것을 담았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한국무용 완전 정복

종합선물세트'라는 윤혜정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역사를 지닌 8개의 전통 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개념인 '미메시스', 즉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의 춤은 물의 흐름(교방무), 바람의 형상(한량무), 땅의 기운(소고춤) 등 자연의 본질적인 요소를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춤사위를 넘어,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해 온 우리 전통과 민속의 깊은 뿌리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엄선된 7개의 춤에 마지막으로 살풀이춤을 더해 완성된 8개의 레퍼토리는 한국 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를 증명한다.'미메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처럼 관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춤을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첫 장을 여는 교방무가 기생들의 유려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물의 흐름을 그려낸다면, 곧이어 펼쳐지는 한량무는 불었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태평소 가락과 어우러져 폭발적인 흥을 분출하는 소고춤의 역동성은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승무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처럼 정적인 여백의 미와 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은 한국 무용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마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각 춤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개 중 6개의 음악을 새로 작곡한 유인상 음악감독의 미니멀한 접근 방식 또한 춤 본연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번 공연은 시각적인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았다. 김지원 의상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의 '하후상박(上薄下豊)' 실루엣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무대 의상을 완성했다. 특히 한량무에서는 K팝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의상에 전통 갓의 챙을 유난히 넓게 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버선발의 섬세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속치마를 시스루 소재로 만들거나 무릎, 뒤꿈치를 과감히 노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전통을 어느 선까지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각 춤의 특징을 살린 의상은 무용수들의 몸짓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미메시스'는 스타 무용수의 참여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현대무용가 기무간이 서울시무용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검무와 태평무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국 무용은 정서적으로 깊은 내면을 다루며,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멈춤의 미학'이 있는 춤"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공연을 통해 현대 무용과 한국 무용의 본질적인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너지를 채워서 밖으로 분출하는 현대 무용과 달리, 무용수가 감정을 비워낸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무용의 정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메시스'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현대적인 해석과 스타 무용수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의미 있는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