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천재' 셰프, 냉장고 열자 모두가 '경악'

2026-02-06 12:59


날카로운 미각과 완벽주의로 주방을 호령하는 천재 셰프의 집 냉장고는 어떤 모습일까.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삐딱한 천재'로 출연한 이찬양 셰프의 충격적인 사생활이 공개된다. 일터에서의 프로페셔널한 모습과는 180도 다른 그의 반전 일상이 예고되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다.오는 5일 방송되는 MBC '구해줘! 홈즈'에서는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의 레스토랑과 실제 거주 공간을 탐방하는 '흑백세권' 임장이 펼쳐진다. 특히 이날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찬양 셰프의 용산구 자택이다. 강남 청담동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무하지만, 일상의 감성을 찾아 6년째 용산에 거주 중이라는 그의 집이 최초로 공개된다.

 


기대와 함께 문을 연 그의 집, 그리고 냉장고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냉장실은 유통기한이 까마득하게 지난 식재료들로 가득했고, 냉동실은 두껍게 쌓인 성에 때문에 내용물을 꺼내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완벽할 것만 같았던 셰프의 냉장고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에 현장은 충격에 빠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흑백요리사' 동료 윤남노 셰프는 "셰프들은 가게 냉장고에만 예민하고, 집에서는 오히려 무심한 경우가 많다"며 의외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과 일상을 철저히 분리하는 셰프들의 현실적인 모습은 프로페셔널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찬양 셰프는 "집에서는 라면 말고는 거의 요리를 안 해서 가스비가 100원 나올 정도"라고 밝혀 또 한 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대신 그는 업장에서 동료들과 끓여 먹는다는 자신만의 비법 라면 레시피를 전격 공개하며 셰프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려 나섰다.

 

과연 '라면 숏폼 머신'을 자처하는 윤남노 셰프마저 "더 달라"고 외치게 만든 그의 특제 라면은 어떤 맛일지, '삐딱한 천재'의 반전 매력과 함께 그가 공개할 비법 레시피의 정체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시온 기자 kwonsionon3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미술관을 발칵 뒤집은 ‘여성의 누드’를 둘러싼 모든 것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