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K클래식?"…'지옥의 선율'이 끝나자 뉴요커들은 모두 일어섰다
2025-10-28 17:43
전 세계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카네기홀, 130여 년의 유서 깊은 이곳에 한국 오케스트라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현지시간 27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카네기홀의 정식 기획공연 시리즈에 초청받아 뉴요커들 앞에 섰다.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의 손끝에서 시작된 첫 곡은 '지옥(Inferno)'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그 시작부터 압도적이었다. 심장을 옥죄는 듯한 팀파니의 묵직한 울림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더니, 이내 모든 악기가 광기 어린 질주를 시작하며 객석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의 풍경을 음표로 그려낸 이 곡은 K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인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정재일 음악감독의 신작으로, 그의 명성다운 파격과 흡인력으로 뉴욕의 밤을 강렬하게 열어젖혔다.정재일 감독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불꽃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고뇌를 음악에 담아냈다고 밝혔다. 그의 철학이 담긴 강렬한 무대가 끝나고, K클래식의 또 다른 자부심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꾸었다.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선보인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로, 김봄소리는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선율로 곡이 가진 서정미를 극대화하며 뉴욕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녀의 활 끝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며 K클래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카네기홀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서울시향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오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오클라호마 맥나이트센터로 무대를 옮겨 K클래식의 감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뉴욕 공연은 단순히 한 오케스트라의 성공적인 연주를 넘어,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에 우뚝 선 한국 클래식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재일의 현대음악부터 멘델스존과 라흐마니노프의 고전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뉴요커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서울시향의 행보는 K클래식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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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선물세트'라는 윤혜정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역사를 지닌 8개의 전통 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개념인 '미메시스', 즉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의 춤은 물의 흐름(교방무), 바람의 형상(한량무), 땅의 기운(소고춤) 등 자연의 본질적인 요소를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춤사위를 넘어,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해 온 우리 전통과 민속의 깊은 뿌리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엄선된 7개의 춤에 마지막으로 살풀이춤을 더해 완성된 8개의 레퍼토리는 한국 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를 증명한다.'미메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처럼 관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춤을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첫 장을 여는 교방무가 기생들의 유려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물의 흐름을 그려낸다면, 곧이어 펼쳐지는 한량무는 불었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태평소 가락과 어우러져 폭발적인 흥을 분출하는 소고춤의 역동성은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승무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처럼 정적인 여백의 미와 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은 한국 무용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마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각 춤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개 중 6개의 음악을 새로 작곡한 유인상 음악감독의 미니멀한 접근 방식 또한 춤 본연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번 공연은 시각적인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았다. 김지원 의상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의 '하후상박(上薄下豊)' 실루엣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무대 의상을 완성했다. 특히 한량무에서는 K팝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의상에 전통 갓의 챙을 유난히 넓게 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버선발의 섬세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속치마를 시스루 소재로 만들거나 무릎, 뒤꿈치를 과감히 노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전통을 어느 선까지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각 춤의 특징을 살린 의상은 무용수들의 몸짓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미메시스'는 스타 무용수의 참여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현대무용가 기무간이 서울시무용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검무와 태평무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국 무용은 정서적으로 깊은 내면을 다루며,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멈춤의 미학'이 있는 춤"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공연을 통해 현대 무용과 한국 무용의 본질적인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너지를 채워서 밖으로 분출하는 현대 무용과 달리, 무용수가 감정을 비워낸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무용의 정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메시스'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현대적인 해석과 스타 무용수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의미 있는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