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감정 체험형 전시에 MZ세대 열광

2026-08-06 21:27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만 머물던 짧은 기록과 그림들이 전시장 벽면으로 자리를 옮겨 관람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부산 동구와 해운대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들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건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전시가 거장들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의 흐름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평범한 삶의 궤적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연습장이나 연출된 일상 사진을 통해 자신의 삶을 투영하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부산 동구 좌천동 문화플랫폼에서 열리는 '재수의 연습장: 재수 좋은 날'은 26만 구독자를 보유한 만화가 재수의 창작 세계를 집대성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작가의 고백이 담긴 말 구름이 배치되어 관람객들을 친근하게 맞이하며 작가가 평범한 관찰자에서 인기 작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수백 점에 달하는 드로잉과 낙서들은 연애의 설렘부터 육아의 고단함,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시간까지 우리 삶의 단편들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작가가 한 장의 완성본을 위해 거쳐온 수많은 연습의 흔적들은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해운대 신세계갤러리에서는 일본 크리에이티브 그룹 엔타쿠 프로듀스가 기획한 감정 체험형 전시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착한데?'와 '틀린 건 아닌데'라는 두 가지 상반된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의 미묘한 인간관계와 심리를 조명한다. 타인을 향한 사소한 배려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삭막한 도시 생활 속에서 잊고 지냈던 따뜻한 인류애를 환기시킨다. 반면 논리적이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이른바 'T형' 사고방식의 상황들을 제시하는 공간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공감과 반성 사이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엔타쿠 프로듀스는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현대인의 일상을 정밀하게 관찰해 글과 사진, 오브제로 표현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들은 이미 뉴욕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그 파급력을 입증한 바 있으며, 부산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선보였다. 특히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상황극 체험 코너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장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곳을 넘어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소통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번 전시들은 디지털 콘텐츠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온라인상에서의 폭발적인 인기가 실제 전시장으로 이어지면서, 전시 문화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료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현대인들이 그만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콘텐츠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솔한 기록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부산 동구의 아카이브 전시는 오는 10월 25일까지 이어지며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신세계갤러리의 체험형 전시는 이달 30일까지만 운영될 예정이어서 관람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두 전시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나서며 스마트폰 속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 중 진정으로 의미 있는 순간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이 기록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작은 연습장 하나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김애란 “AI 시대에도 문학은 필요하다”

문학의 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빠르게 파고드는 가운데 인간과 세계를 느린 호흡으로 들여다보는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오는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행사에는 8개국 2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올해 축제의 주제는 ‘누구세요?’다. 나와 타인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문학은 오랫동안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집중해 왔지만, 오늘날에는 사람을 복잡한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더 큰 정체성으로 단순하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축제는 이러한 복잡성을 다시 들여다보고 타인과의 연대를 모색한다.축제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김연수 작가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타인은 결국 이야기를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다”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그는 이번 축제에서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기보다는 또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그게 문학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2006년 제1회 축제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연수 작가는 20년 만에 다시 기획위원을 맡았다. 그는 한국 문학의 달라진 위상을 언급하면서 AI만으로는 인간과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I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타인이 누구인지, 세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개막 대담에는 김애란 작가와 벵하민 라바투트 작가가 ‘사람입니다’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김애란 작가는 ‘달려라, 아비’, ‘비행운’, ‘안녕이라 그랬어’ 등을 통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포착해 사회와 인간을 바라봐 왔다.라바투트 작가는 ‘매니악’ 등의 작품에서 논픽션을 탐구하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면 픽션으로 넘어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바라본 두 작가는 결국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지점에서 만난다.김애란 작가는 인간에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비효율성’을 언급했다. 가족의 안부를 묻는 순간처럼 일상적인 행동에서 인간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모든 동물에게 자기 보존 욕구가 있지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라바투트 작가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다양한 경험과 인간이 풀어내지 못하는 세상의 미스터리를 꼽았다. 그는 예술이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며, 문학은 결말을 알 수 없는 것을 계속 탐구하는 장르라고 말했다.AI가 읽기와 쓰기의 기본적인 관계를 바꾸고 창작 영역까지 진입하고 있지만, 작가들은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봤다. 특히 AI가 결과를 빠르게 제시하는 것과 달리 예술에서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김연수 작가는 AI가 결과물을 보여줄 뿐 그 과정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술에서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순히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을 통해 알게 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앎만 생기는 것은 맹신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김애란 작가는 실시간 번역 기술을 예로 들며 소통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SNS에 실시간 번역 기능이 등장했을 당시에는 언어의 장벽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갈등과 혐오, 전쟁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다.그는 문학의 미덕 가운데 하나가 소통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가 빠르게 오간다고 소통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라는 의미다.올해 서울국제작가축제에는 소설과 시뿐만 아니라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김효은·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의 ‘어린이입니다’, 안보윤·실비아 모레노 가르시아 작가의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이승우·데이먼 갤것 작가의 ‘직면하는 사람입니다’, 김멜라·천쉐 작가의 ‘몸을 쓰는 사람입니다’, 황정은·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다른/같은 사람입니다’ 등의 대담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