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무용 끝판왕' 바디콘서트, 콜드플레이까지 사로잡은 이유

2025-03-04 14:02

 예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대중화가 어려운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특별한 무대를 선보였다. 바로 그들의 대표작 ‘바디콘서트’ 15주년 기념 공연이다. 현대무용계에서 무용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인데, 초연 이후 재연과 삼연을 이어가며 15년간 무대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기적 같은 성과다. 보통 주말을 낀 짧은 공연 일정이 일반적인데, 이번 공연은 1000석 규모의 극장에서 15일 동안 이어지는 과감한 도전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공연 현장은 무용수들의 열정과 강렬한 에너지가 객석에 그대로 전해지는 뜨거운 분위기였다. 이 작품이 한국 현대무용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이번 무대 역시 오랫동안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바디콘서트’는 ‘일반인을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공연은 다프트 펑크의 ‘슈퍼히어로’로 시작해 MC해머, 비욘세, 헨델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11곡의 음악에 맞춰 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생동감 넘치는 안무와 혁신적인 움직임을 통해 춤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2012년 국제현대무용제(모다페)에 공식 초청되며 국내 주요 무용 페스티벌에서도 주목받았고, 이제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공연에서도 ‘바디콘서트’만의 다채로운 매력이 돋보였다. 초반의 흥겨운 리듬에서 출발한 춤은 점점 강렬해지며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에 맞춰 펼쳐진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이 수년간 쌓아온 기량의 극한을 보여주며 객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순수한 감정의 고양을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마지막에는 무용수가 무대 바닥을 구르고 기다 일어서는 장면이 이어지며 앰비규어스 특유의 강렬한 춤 세계를 보여줬다.

 

앰비규어스를 이끄는 김보람 예술감독은 무용계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가수 엄정화 등의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무용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 가수 현진영의 춤을 보고 무용에 매료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방송댄스팀에서 활동했다. 이후 여러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서울예대에서 본격적으로 무용을 공부한 후 2008년 앰비규어스를 창단했다. 창단 이듬해 CJ영페스티벌에서 ‘에브리바디 시즌Ⅲ 볼레로’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10년 ‘바디콘서트’를 발표하며 현대무용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바디콘서트’가 탄생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연습실이 없어 공사장과 잠수교, 여의나루를 전전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비 오는 날에는 굴다리 밑에서, 새벽에는 잠수교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며 연습을 끝마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15년간 사랑받으며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이끄는 대표작이 되었다.

 

이번 15주년 기념 공연은 기업 협찬이나 공적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무용 공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극장에서 열렸다. 티켓 가격도 최고 10만 원으로 책정되었지만, 관객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 김보람 예술감독은 언론 시연회에서 “무모한 도전이지만 더 큰 가능성을 생각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현대무용의 한계를 넘어 ‘K-무용’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2020년 한국관광공사의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캠페인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2021년에는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김보람 감독은 유럽의 여러 단체와 협업을 진행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오리야크 거리예술축제에서 전통음악과 현대적 비트를 결합한 ‘피버’를 선보였으며, 올해도 ‘바디콘서트’ 공연이 끝난 후 4월까지 프랑스와 스위스 5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는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현대무용을 접하는 관객이 많지 않다. 김보람 감독은 “99.9%의 사람들은 평생 현대무용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경험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바디콘서트는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한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극한의 표현을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누구나 와서 그 명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3월 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도전과 열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무대 위 검은 의자 셋, 그리고 세 배우가 빚어낸 소름 돋는 '유령'의 실체!

렸다. '연극계 히트 메이커'로 불리는 이들의 저력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됐다. 2011년 결성된 양손프로젝트는 연출 박지혜와 배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 네 명으로 구성된 공동 창작 집단이다. 이들은 창작 과정에서 역할 구분을 명확히 두지 않고 치열한 설득과 토론을 거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존 텍스트의 이면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법으로 재해석하고, 무대는 빈 공간에 소품을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 초 국립극단의 기획 초청작 '파랑새&전락'으로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이들은, 이번 '유령들'을 시작으로 3년간 매해 한 편씩 선보일 헨리크 입센 3부작 시리즈의 첫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었다.최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양손프로젝트는 입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구조가 정교하게 장식 없이 직진하는 느낌이 있다. 그게 저희 팀 성격과 잘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다자이 오사무, 현진건 등 국내외 소설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입센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취지다. 국내에는 '유령'으로 번역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이 원작인 이 작품은, 노르웨이 시골 마을 저택에 사는 알빙 부인이 종교적, 사회적 억압에 갇혀 파멸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병, 간통, 근친상간, 안락사 등 파격적인 내용으로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공연이 금지될 정도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알빙 부인은 만데르스 목사에게, 사회 관습에,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당하는데, 이는 가부장의 민낯을 드러내고 끝내 망가져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페미니즘적 작품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그리고 알빙 부인은 자신을 억누르는 모든 것을 '유령' 같다고 표현한다.박지혜 연출은 자신이 생각하는 '유령'에 대해 "우리 모두는 체면을 중시하고 사회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항상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며, "작품이 쓰일 당시에도 느껴지던 사회적 비난과 매장에 대한 두려움이 현대 사회에도 연결되는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손상규 배우는 여기에 덧붙여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드는 실체 없는 모든 것들이야말로 '유령'"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작품의 무대는 사면을 관객이 둘러싸고 관람하는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 배우들은 무채색의 장식 없는 의상을 입고 등장하며, 무대 위에는 크기와 형태가 다른 검은 의자 세 개만이 놓여 있다.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알빙 부인이 심리적 압박을 느낄 때는 빛을 이용해 공간을 좁히는 연출을 활용하여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박지혜 연출은 "마당처럼 열린 공간인 동시에 조명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에 갇힌 듯한 공간으로도 만들 수 있다"며, "집에 흰 바닥에 검은 가구를 두지는 않는데,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곳"이라고 무대 의도를 밝혔다.이번 작품에서는 세 명의 배우가 총 다섯 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양조아 배우가 맡은 알빙 부인 역할을 제외한 나머지 역할은 손상규와 양종욱 배우가 번갈아 가며 소화한다. 희곡 속 지문(해설)을 직접 말하는 것 역시 양손프로젝트가 자주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관객은 연극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끼고 몰입할 수 있다. 어느덧 결성 15주년을 맞이한 양손프로젝트가 이토록 오랫동안 함께 작업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손상규 배우는 "양손프로젝트에서 작업할 때는 외부에서 할 때와 달리 속 시원히 다 얘기하고 부딪힐 수 있다"며, "일하기 위해 만난 사이지만 이해관계라는 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며 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이들의 방식이 바로 '양손프로젝트'를 연극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