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 태일, 어쩌다... 성폭행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사연
2025-03-05 11:13
"오빠가 그럴 리 없어." 한때 K팝을 대표하던 그룹 NCT의 팬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멤버 태일(31·본명 문태일)이 지인 2명과 함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화려한 무대 위 스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특수준강간'이라는 무거운 범죄 혐의만이 남았다.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1부(김은미 부장검사)는 지난달 28일 태일과 공범 2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에 놓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수준강간은 2명 이상이 합동하여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사람을 간음한 경우 성립하며,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지난해 8월 태일을 소환 조사했다. 당시 경찰은 태일과 공범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피의자들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같은 해 9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이들을 재판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번 사건은 연예계, 특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성범죄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과거에도 여러 아이돌 멤버들이 성범죄 혐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K팝 산업 전체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태일과 공범들에 대한 재판은 앞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 과정에서 혐의가 입증될 경우, 태일은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연예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K팝 산업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권시온 기자 kwonsionon35@trendnewsreaders.com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