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에서 즐기는 7일간의 시간여행

2025-04-14 14:53

조선시대 왕실 여성의 삶과 국가의례를 재조명하는 ‘2025년 종묘 묘현례’ 행사가 오는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7일간 서울 종로구 종묘 일원에서 열린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와 국가유산진흥원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조선 왕실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시민들이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묘현례(廟見禮)’는 조선시대 혼례를 마친 왕비나 세자빈이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에 인사를 드리는 의식으로, 국가의례 중 유일하게 여성이 종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예식이다. 종묘가 왕실의 정신적 중심지였던 만큼, 이 의식은 왕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예 ceremonial 로 평가된다. 이번 행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창작 뮤지컬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살아 숨 쉬는 유산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기획됐다.

 

행사의 중심 프로그램은 창작 뮤지컬 ‘묘현, 왕후의 기록’이다. 1703년 숙종의 세 번째 왕비였던 인원왕후의 묘현례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역사적 고증을 기반으로 당시 의례의 정황과 인물들의 내면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특히 인원왕후와 그의 부친 김주신의 애틋한 부녀 관계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공연은 4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하루 두 차례(오후 1시, 4시) 영녕전에서 진행되며, 회당 350명씩 총 700명이 관람할 수 있다. 관람은 무료이며, 온라인 사전 예매 200명과 현장 접수 150명을 통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향, 부용향 만들기’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이 체험은 종묘 정전의 악공청에서 진행되며, 참가자들은 조선 왕실 의례에 사용됐던 부용향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악공청은 과거 제례 시 악공과 무용수들이 대기하던 장소로, 전통의 공간에서 왕실 문화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체험은 행사 기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설 운영되며, 온라인 사전 예매(175명)와 현장 접수(105명)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또한 영녕전 악공청에서는 ‘세자·세자빈이 되어 사진 찍기’ 체험이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대례복 등 전통 복식을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으며, 선착순 200명에게는 즉석 인화된 사진이 제공된다. 이 체험 역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시 운영되며, 현장 접수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 동일 행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큰 관심을 보인 바 있어, 이번 행사에서도 국내외 관람객들의 높은 참여가 기대된다.

 

‘묘현, 왕후의 기록’과 ‘부용향 만들기’ 체험의 사전 예매는 4월 15일 오후 2시부터 티켓링크를 통해 선착순으로 진행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운영되며, 사전 신청이 어려운 경우에도 현장에서 접수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종묘 묘현례 행사는 조선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나아가 전통 국가의례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라며,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및 국가유산진흥원 홈페이지 또는 궁능 활용 프로그램 전화상담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이사라, 칼날로 빚은 동심

랫동안 천착해 온 '동심'이라는 주제를 회화와 조각으로 풀어낸 자리다. 작가는 사실주의 회화에서 출발해 인간 내면의 탐구를 거쳐 자신만의 유토피아인 '원더랜드'를 구축해 왔다. 작품 속 소녀들은 행복과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며,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한 감각과 감정을 다시금 일깨운다.이사라 작품의 정체성은 소녀의 눈동자에서 완성된다. 작가에게 눈은 단순히 시각 기관을 넘어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잇는 통로이자, 원더랜드의 모든 서사가 압축된 공간이다. 촘촘하게 쌓인 형형색색의 문양들은 관람객을 빨아들일 듯한 깊이감을 선사하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작은 세계는 보는 이에게 위로와 평온을 전한다. 작가는 이 눈동자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집요할 정도로 세밀한 공정을 거치며, 이를 통해 동심이 가진 생명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해 보인다.화면의 화려한 색감 뒤에는 작가의 고된 노동이 숨어 있다. 나무 패널 위에 건축 재료를 바르고 사포질하는 밑 작업을 수차례 반복한 뒤, 흰 물감을 두껍게 올려 바탕을 만든다.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후 날카로운 칼날로 표면을 긁어내어 흰 선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그림 곳곳에서 반짝이는 빛의 효과는 붓질이 아닌 칼끝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두 손을 비비며 기도하는 의식에 비유하며, 작품을 마주하는 모든 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칼날 끝에 담아낸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의 소녀가 입체 공간으로 걸어 나왔다는 점이다. 작가는 회화 신작 13점과 더불어 처음으로 시도한 조각 작품 16점을 함께 선보인다. 조각으로 구현된 소녀들 역시 회화에서 보여준 섬세한 표면 처리와 화려한 눈동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는 평면 속에 갇혀 있던 원더랜드의 서사를 실제 관람객이 숨 쉬는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입체화된 소녀들은 더욱 생생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관람객과 정서적 교감을 시도한다.이사라 작가는 한국 예술계의 명문가 출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세대 연극인 고(故) 이해랑의 손녀이자 극사실주의 화풍의 대가 이석주 작가의 딸인 그는, 탄탄한 학문적 배경과 독창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그의 작업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상업적 매력도 충분해 삼성전자, 아디다스, 하리보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다. 특히 스포츠 구단의 유니폼 디자인에 참여하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행보를 통해 현대 미술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노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사라가 구축한 원더랜드의 정점을 보여주는 자리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미술관 등 주요 기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적 성취를 뒷받침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섬세함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칼끝으로 긁어낸 수만 번의 흔적이 모여 완성된 소녀의 눈동자는,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순수한 유토피아의 존재를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