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격노’ 수사 급물살..특검의 항소 포기

2025-07-09 14:36

 이명현 특별검사팀이 9일 해병대원 순직사건 관련 항명 혐의를 받았던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에 대한 항소를 전격 취하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박 전 대령은 형사적으로 완전한 무죄를 확정받게 됐고, 해당 사건을 둘러싼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인 군검찰의 공소권 남용 논란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명현 특별검사는 이날 서울 서초구 특검사무실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령에 대한 항소는 취하하기로 결정했다”며 “원심 판결과 객관적 증거, 군검찰의 항소 사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항소를 유지할 법리적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박 대령의 초동수사 및 경찰 이첩 행위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으로, 이를 항명으로 간주한 군검찰의 기소는 공소권을 남용한 행위”라고 단언했다.

 

박 전 대령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에서 발생한 해병대원의 순직 사건과 관련해 수사단장으로서 사건을 초동 수사하고 이를 경찰에 이첩했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같은 해 8월 2일,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의 이첩 중단 지시에 불응했다며 박 대령을 항명죄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군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 수괴’라는 중대 혐의를 적용하며 ‘VIP 격노는 망상’이라는 표현을 써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 군검찰은 혐의를 항명죄로 낮춰 불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중앙지역군사법원은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병대사령관의 지휘·감독 권한이 수사기록 이첩을 정당한 사유 없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박 대령이 이첩을 강행한 것은 법령상 책임에 따른 조치였다는 점을 들어 군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사령관의 지시는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고 못 박았다.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검찰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명령 불복종 사실을 공소장에 추가하는 등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특검팀은 항소 유지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철회함으로써 사건을 사실상 마무리 지었다.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오늘 오전 법원에 항소취하서를 접수하면 박 대령의 무죄가 확정된다”며 “재판과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추가 소송을 이어가는 건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검의 항소취하 결정에 대해 이종섭 전 장관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번 결정은 공정한 수사를 포기한 선언이며, 편파 수사를 공개적으로 자인한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충분한 법리적 검토를 거쳤으며,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반박했다. 실제로 박 대령 항소심 공소유지를 맡았던 특검 4팀은 향후 군 관계자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특검의 결정은 단순한 항소 취하를 넘어 군 내부의 기소 남용과 외압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검팀은 이미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에 대해 직무 배제를 국방부에 요청한 상태이며, 군검찰 수뇌부와 관련 검사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포함한 수사를 검토 중이다.

 

아울러 특검은 오는 11일, ‘VIP 격노설’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직권남용 혐의로 조사할 예정이다. ‘VIP 격노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 3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나”라고 격노해 해병대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국방부는 이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에서 회수해 재검토했으며, 그 과정에서 주요 피의자인 임성근 전 1사단장이 혐의 대상에서 빠졌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명현 특검팀의 행보는 해병대원 순직사건이라는 단일 사건을 넘어, 군 수사체계 전반과 국가 최고 권력층의 외압 가능성까지 겨누고 있다. 항소 취하로 인해 사건의 한 축은 정리됐지만, 수사 외압 실체를 밝히기 위한 특검 수사의 긴장감은 오히려 더 고조되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보따리로 세계를 감쌌다” 김수자, 프랑스 최고 예술훈장 또 받아

서 열린 수훈식에서 김 작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으며 예술적 성취와 문화적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훈장은 프랑스 문화부가 1957년 제정한 것으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거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수여된다. 등급은 슈발리에(Chevalier), 오피시에(Officier), 코망되르(Commandeur) 순으로 나뉘며, 이번 오피시에 훈장은 김 작가가 2017년 받은 슈발리에에 이은 두 번째 수훈이다.수훈식에서 필립 드 페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는 김수자 작가에 대해 “사진, 비디오, 천과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 온 세계적인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김 작가의 대표작인 ‘바느질’ 연작과 이를 발전시킨 ‘보따리’ 작업에 대해 “한국 문화의 상징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그의 작업은 단순한 미술을 넘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수자는 1957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초기에는 회화 작업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거리에서 수집한 헌 옷, 보자기, 이불보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전환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바느질’과 ‘천’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이동, 여성성과 고통이라는 복합적 서사를 담아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1993),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독일 카셀 도큐멘타, 리옹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제 유수 기관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특히 프랑스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198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에콜 드 보자르(국립예술학교)에서 석판화를 공부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프랑스 공공 및 사립 미술기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퐁피두 메츠 미술관의 개인전,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영구 설치 작업, 프와티에 도시 프로젝트 등이 있다.최근에는 2024년 3월부터 9월까지 파리의 피노컬렉션 미술관(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 형식의 전시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카르트 블랑쉬’는 미술관 측이 작가에게 전시 기획과 설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매우 제한된 작가에게만 부여되는 명예로운 기회다. 이 전시에서 김 작가는 미술관의 상징적 공간인 로툰다 바닥에 418개의 거울을 설치한 ‘호흡’을 비롯해 지하층에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수훈 소감에서 김수자는 “프랑스는 제게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히고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특별한 나라”라며 “프랑스 정부와 문화기관의 지속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이 훈장은 저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많은 분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김수자의 이번 훈장 수훈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예술계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동시에 '보따리'라는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며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온 그의 궤적은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