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가장 소름 돋는 연극 두 편

2025-07-10 14:27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공포극 두 편이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뱀파이어와 외로운 소년의 만남을 그린 잔혹하면서도 슬픈 이야기 ‘렛미인’, 그리고 오전 2시 22분에 어김없이 울리는 소리의 정체를 둘러싼 미스터리 연극 ‘2시 22분’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장르인 ‘공포’를 다루고 있지만,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서사 방식으로 관객의 긴장감을 자극한다.

 

먼저 ‘렛미인’은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오는 8월 1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작품의 배경은 눈 내리는 스웨덴 외곽의 어느 마을.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외로운 소년 오스카와, 정체불명의 신비한 소녀 일라이의 만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둘의 우정과 교감이 깊어질수록, 마을에는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모두 빼앗긴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고, 관객은 일라이와 그를 지키는 남성 하칸이 사건의 중심에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와 달리 배우의 뱀파이어 연기가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특히 안무가 스티븐 호겟이 연출한 일라이의 몸짓은 동물적인 본능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괴기함을 극대화하며, 피를 묻힌 채 포효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안긴다. 그러나 연극은 단순한 ‘피의 향연’에 머물지 않는다. 무대 전체를 덮는 눈, 서늘한 푸른 조명, 몽환적인 음악은 무자비한 공포 속에도 서정성을 부여하며, 잔혹한 세계 속에서도 외로움과 삶의 본질을 고요하게 묻는다. 연출가 존 티파니는 “죽지 않는 존재는 결국 가장 외롭고 슬픈 존재가 된다”는 주제를 통해, 공포의 이면에 깃든 인간적인 비극을 그린다.

 

 

 

반면 ‘2시 22분’은 시종일관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심리극이다.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국내에서는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연극은 새집으로 이사 온 주인공 제니가 매일 오전 2시 22분에 반복해서 들리는 정체불명의 소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남편 샘의 친구 로렌과 벤을 집으로 초대하고, 그들에게 이 이상한 소리를 함께 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작품의 중심은 ‘유령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이다. 이성과 과학을 믿는 샘, 감성적이고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심리상담가 로렌, 실용주의자인 전기 기술자 벤, 그리고 영적 현상에 민감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제니까지. 각기 다른 관점을 지닌 네 인물이 나누는 팽팽한 대화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긴장감을 더한다. 대화가 진행되는 사이, 갑작스러운 동물의 울음소리나 아기 울음, 발자국 소리 등이 청각적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오전 2시 22분이 가까워질수록 관객의 심리적인 압박감은 극에 달한다.

 

무대 연출 또한 이러한 긴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연출을 맡은 김태훈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간을 결합하면 긴장이 배가된다”며 무대에 일반 가정에선 보기 어려운 대형 디지털 시계를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시계는 관객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 시간’을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해 공포의 강도를 한층 높인다. 김 연출가는 이어 “심리적 압박감과 인간 관계의 균열도 공포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며, 연극이 단순한 ‘깜짝 놀람’을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로도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두 작품은 공포라는 동일한 키워드를 공유하지만, 표현 방식과 정서,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다. ‘렛미인’이 차가운 눈밭 위에 펼쳐지는 외로운 이들의 잔혹한 운명을 그린다면, ‘2시 22분’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들은 단순히 더위를 피할 ‘서늘한 체험’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각기 다른 색채의 공포를 무대 위에 풀어낸 두 연극은 관객에게 오싹한 체험은 물론, 공포를 넘어선 서사적 깊이까지 전달하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 속, 무대에서 마주하는 두려움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감정일지 모른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보따리로 세계를 감쌌다” 김수자, 프랑스 최고 예술훈장 또 받아

서 열린 수훈식에서 김 작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으며 예술적 성취와 문화적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훈장은 프랑스 문화부가 1957년 제정한 것으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거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수여된다. 등급은 슈발리에(Chevalier), 오피시에(Officier), 코망되르(Commandeur) 순으로 나뉘며, 이번 오피시에 훈장은 김 작가가 2017년 받은 슈발리에에 이은 두 번째 수훈이다.수훈식에서 필립 드 페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는 김수자 작가에 대해 “사진, 비디오, 천과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 온 세계적인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김 작가의 대표작인 ‘바느질’ 연작과 이를 발전시킨 ‘보따리’ 작업에 대해 “한국 문화의 상징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그의 작업은 단순한 미술을 넘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수자는 1957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초기에는 회화 작업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거리에서 수집한 헌 옷, 보자기, 이불보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전환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바느질’과 ‘천’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이동, 여성성과 고통이라는 복합적 서사를 담아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1993),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독일 카셀 도큐멘타, 리옹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제 유수 기관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특히 프랑스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198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에콜 드 보자르(국립예술학교)에서 석판화를 공부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프랑스 공공 및 사립 미술기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퐁피두 메츠 미술관의 개인전,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영구 설치 작업, 프와티에 도시 프로젝트 등이 있다.최근에는 2024년 3월부터 9월까지 파리의 피노컬렉션 미술관(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 형식의 전시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카르트 블랑쉬’는 미술관 측이 작가에게 전시 기획과 설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매우 제한된 작가에게만 부여되는 명예로운 기회다. 이 전시에서 김 작가는 미술관의 상징적 공간인 로툰다 바닥에 418개의 거울을 설치한 ‘호흡’을 비롯해 지하층에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수훈 소감에서 김수자는 “프랑스는 제게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히고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특별한 나라”라며 “프랑스 정부와 문화기관의 지속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이 훈장은 저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많은 분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김수자의 이번 훈장 수훈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예술계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동시에 '보따리'라는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며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온 그의 궤적은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