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합의’ 속 290원 인상…노동계 불씨 여전해

2025-07-11 10:37


2026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20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올해(1만20원)보다 2.9% 인상된 수치로, 월 환산액은 215만6,880원(209시간 기준)이다. 이번 결정은 2008년 이후 17년 만에 노·사·공익위원 간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간 매년 격렬한 대립 끝에 표결로 귀결되던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의 복원이란 상징적 전환점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노총 소속 위원들이 최종 표결 직전 회의장을 퇴장하면서,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최저임금위원회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의결했다. 이인재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17년 만의 합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대화의 성과로 남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근로자위원 9명 중 민주노총 소속 4명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만210~1만440원)에 강하게 반발하며 전날 회의에서 전원 퇴장했고, 최종적으로 한국노총 소속 위원 5명만 참여해 합의에 이르렀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노동자는 실수령액 200만 원도 안 되는 현실인데 이번 인상률은 현실을 외면한 수치”라며, “사용자 편에 선 공익위원들의 촉진구간 설정은 편파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한 한국노총조차도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설정된 촉진구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인상률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가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계는 이번 합의에 대해 일정 부분 평가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적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은 11일 논평에서 “현재 대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17년 만에 노사합의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수 침체와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추가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계도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사용자위원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이번 합의는 우리 사회가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난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동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지만, 내수 침체와 복합 경제 위기 속에서 고심 끝에 합의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합의 과정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위원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결과”라며 “이에 따른 부담과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대해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신속히 추진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난이나 고용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통해 공익위원 중심의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형식상 27명의 위원(근로자·사용자·공익 각 9명)으로 구성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공익위원의 판단이 사실상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심의촉진구간 역시 노동계의 최종안보다 400원 가까이 낮은 수준으로 제시됐고, 경영계 안에 대해서는 고작 30원 올린 수준이었다. 이인재 위원장은 이에 대해 “매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진 않는다”고 해명하며, 내년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성장률, 물가 상승률, 취업자 수 증감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공익위원이라는 명칭이지만 실상은 정부 의중이 반영되기 쉬운 구조”라며, “매년 비슷한 방식의 저인상률 결정은 공정성과 수용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이재명 정부에서도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독일식 전문가 중심 모델을 참고해 위원회 구성 방식, 결정 절차, 인상 주기 등을 포함한 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은 노사 전문가 각 3인으로 구성된 9인의 위원회가 2년 단위로 인상안을 마련하는 다단계 체계를 갖추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현재 제도는 노사 갈등을 반복해 사회적 피로도가 크다”며 “특수고용직과 도급 근로자 문제까지 포함한 전면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보따리로 세계를 감쌌다” 김수자, 프랑스 최고 예술훈장 또 받아

서 열린 수훈식에서 김 작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으며 예술적 성취와 문화적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훈장은 프랑스 문화부가 1957년 제정한 것으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거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수여된다. 등급은 슈발리에(Chevalier), 오피시에(Officier), 코망되르(Commandeur) 순으로 나뉘며, 이번 오피시에 훈장은 김 작가가 2017년 받은 슈발리에에 이은 두 번째 수훈이다.수훈식에서 필립 드 페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는 김수자 작가에 대해 “사진, 비디오, 천과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 온 세계적인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김 작가의 대표작인 ‘바느질’ 연작과 이를 발전시킨 ‘보따리’ 작업에 대해 “한국 문화의 상징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그의 작업은 단순한 미술을 넘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수자는 1957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초기에는 회화 작업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거리에서 수집한 헌 옷, 보자기, 이불보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전환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바느질’과 ‘천’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이동, 여성성과 고통이라는 복합적 서사를 담아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1993),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독일 카셀 도큐멘타, 리옹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제 유수 기관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특히 프랑스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198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에콜 드 보자르(국립예술학교)에서 석판화를 공부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프랑스 공공 및 사립 미술기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퐁피두 메츠 미술관의 개인전,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영구 설치 작업, 프와티에 도시 프로젝트 등이 있다.최근에는 2024년 3월부터 9월까지 파리의 피노컬렉션 미술관(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 형식의 전시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카르트 블랑쉬’는 미술관 측이 작가에게 전시 기획과 설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매우 제한된 작가에게만 부여되는 명예로운 기회다. 이 전시에서 김 작가는 미술관의 상징적 공간인 로툰다 바닥에 418개의 거울을 설치한 ‘호흡’을 비롯해 지하층에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수훈 소감에서 김수자는 “프랑스는 제게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히고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특별한 나라”라며 “프랑스 정부와 문화기관의 지속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이 훈장은 저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많은 분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김수자의 이번 훈장 수훈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예술계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동시에 '보따리'라는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며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온 그의 궤적은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