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벽을 파낸 남자의 충격적 진실... 교도소장도 몰랐던 '쇼생크의 비밀'

2025-07-11 12:11

 절망적 상황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작은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스티븐 킹은 희망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친 작가다. 1947년 미국 메인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40년 넘게 50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내며 '이야기의 제왕'으로 우뚝 섰다.

 

킹의 중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1982년 출간된 중편집 '사계'에 실린 작품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테마로 묶인 네 작품 중 '봄'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희망의 시작을 상징하며,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선택하는지 탐구한다.

 

원작을 영화로 옮긴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헝가리 난민의 아들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인물이다. 그는 소설을 읽고 확신에 차 영화 판권을 사들인 후, 8주간 각색해 대본을 완성했다. 이후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린마일'과 '미스트'도 연출하며 '킹 원작, 다라본트 각색 3부작'의 첫 작품으로 '쇼생크 탈출'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와 소설 모두 '레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에서 레드는 아일랜드계 백인이지만, 영화에서는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흑인으로 등장한다. 앤디는 유망한 은행원이었으나 아내와 불륜 상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그가 수감된 쇼생크 교도소는 강력범들이 주로 수감된 '지옥'과도 같은 곳이다.

 

앤디는 교도소 내 부패와 불의를 목격하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원 시절의 능력을 발휘해 교도관들의 세금 컨설팅에 나서며 조금은 편하게 수감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수감 기간 내내 탈옥 통로를 만들며 동료 죄수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영화의 백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중창이 교도소에 울려퍼지는 장면이다. 앤디가 교도소장 사무실에서 틀어준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은 죄수들에게 잠시나마 자유와 희망의 감정을 선사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복선이기도 하다. 오페라 속 두 여인이 권력자를 속여 자유를 얻으려 하듯, 앤디 역시 감옥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벽을 교묘하게 이용해 탈출을 준비한다.

 

앤디는 교도소 안에 도서관도 만든다. 6년 넘게 정부에 편지를 보내 예산을 요청하고 마침내 '브룩스 도서관'을 세운다. 이곳은 죄수들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창을 발견하는 공간이 된다. 그는 희망이 먼 미래의 기적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실천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러나 모두가 희망을 견디는 것은 아니다. 50년 가까이 복역한 브룩스는 가석방 후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고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라는 쓸쓸한 문구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레드는 이를 두고 "이 벽이란 참 이상하다. 처음엔 미워하다가, 나중엔 익숙해지고, 결국엔 그 벽에 의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레드도 가석방되어 브룩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그는 한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마음에서 지워내려 했지만, 바깥세상에서 극심한 두려움과 무력감에 시달린다. 이때 그를 붙잡아준 것은 앤디가 남긴 희망의 메시지였다. 레드는 마침내 익숙함의 사슬을 끊고, 앤디가 남긴 약속의 장소로 향한다.

 

앤디는 19년 동안 돌망치로 벽을 파내며 탈출을 준비했다. 폭풍우 치는 밤, 그는 벽을 뚫고 하수관을 타고 쇼생크 교도소를 탈출한다. 교도소장의 비자금을 인출하고, 비리 증거를 언론과 경찰에 넘긴 후 멕시코의 지와타네호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레드는 앤디의 초대를 받아 희망을 품고 국경을 넘어 그와 재회한다.

 

'쇼생크 탈출'은 개봉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존재감이 빛나는 명작으로 자리잡았다. 영화는 단순한 탈옥극이 아닌, 절망의 감옥에서 희망을 행동으로 옮긴 한 인간의 여정과 그 희망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모두를 변화시키는 기적을 보여준다.

 

희망은 언젠가 찾아올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절망의 벽 앞에서도, 우리는 매일의 작은 행동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희망이, 언젠가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보따리로 세계를 감쌌다” 김수자, 프랑스 최고 예술훈장 또 받아

서 열린 수훈식에서 김 작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으며 예술적 성취와 문화적 기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훈장은 프랑스 문화부가 1957년 제정한 것으로,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거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에게 수여된다. 등급은 슈발리에(Chevalier), 오피시에(Officier), 코망되르(Commandeur) 순으로 나뉘며, 이번 오피시에 훈장은 김 작가가 2017년 받은 슈발리에에 이은 두 번째 수훈이다.수훈식에서 필립 드 페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는 김수자 작가에 대해 “사진, 비디오, 천과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독창적인 작업을 해 온 세계적인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김 작가의 대표작인 ‘바느질’ 연작과 이를 발전시킨 ‘보따리’ 작업에 대해 “한국 문화의 상징성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라며 “그의 작업은 단순한 미술을 넘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김수자는 1957년 대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초기에는 회화 작업을 하다 1990년대 초부터 거리에서 수집한 헌 옷, 보자기, 이불보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전환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바느질’과 ‘천’이라는 전통적인 재료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이동, 여성성과 고통이라는 복합적 서사를 담아내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베니스 비엔날레(1993),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독일 카셀 도큐멘타, 리옹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 등 국제 유수 기관에서도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특히 프랑스와는 오랜 인연이 있다. 1984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에콜 드 보자르(국립예술학교)에서 석판화를 공부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프랑스 공공 및 사립 미술기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퐁피두 메츠 미술관의 개인전, 메츠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영구 설치 작업, 프와티에 도시 프로젝트 등이 있다.최근에는 2024년 3월부터 9월까지 파리의 피노컬렉션 미술관(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르트 블랑쉬’(Carte blanche) 형식의 전시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카르트 블랑쉬’는 미술관 측이 작가에게 전시 기획과 설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매우 제한된 작가에게만 부여되는 명예로운 기회다. 이 전시에서 김 작가는 미술관의 상징적 공간인 로툰다 바닥에 418개의 거울을 설치한 ‘호흡’을 비롯해 지하층에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수훈 소감에서 김수자는 “프랑스는 제게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히고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특별한 나라”라며 “프랑스 정부와 문화기관의 지속적인 후원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이 훈장은 저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라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많은 분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김수자의 이번 훈장 수훈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예술계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다. 동시에 '보따리'라는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며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온 그의 궤적은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