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당한 김병기, 지도부 향한 분노 '부글부글'

2025-09-12 17:22

 여야 특검법 합의를 둘러싼 번복 사태로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던 더불어민주당의 '투톱' 갈등이 위태로운 휴전에 들어갔다. 정청래 당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일단 공개적인 확전을 자제하며 갈등 봉합에 나섰지만, 이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서의 일시적 봉합일 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초반, 집권 여당의 리더십 분열이 국정 동력 상실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대한 위기감이 두 사람을 일단 카메라 앞에 나란히 앉혔다.

 

갈등의 중심에 선 정청래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먼저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그는 특검법 처리 과정의 혼란을 의식한 듯 "결국 역사는 하나의 큰 물줄기로 흘러간다"며 "우리 안의 작은 차이가 상대방과의 차이보다 크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이자 동지"라며 '찰떡 원팀'을 외쳤다. 이는 사실상 전날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반발했던 김병기 원내대표를 향한 유화적 메시지였다.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일단은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전날 "정청래한테 사과하라고 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비공개 최고위에 불참했던 그였지만, 이날은 항의성 불참이라는 예상을 깨고 정 대표의 바로 옆자리를 지켰다. 심지어 공개 발언에서는 특검법 사태에 대한 언급을 일절 배제하고 현안에 대해서만 발언하며 논란의 확산을 경계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여전히 부글부글 끓는 용암 같은 감정의 골이 감지된다. 카메라 앞에서의 어색한 동석과 달리, 물밑에서는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전날 밤 연출됐다. 정 대표 측이 갈등을 풀기 위해 제안한 저녁 식사 자리를 김 원내대표를 포함한 원내지도부가 통째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감정싸움을 넘어, 원내 사안에 대한 당 지도부의 개입, 즉 '월권'이라는 근본적인 불만이 폭발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 원내대표 측의 분노는 '토사구팽' 당했다는 배신감에서 비롯된다. 당내 협의를 거쳐 어렵게 여야 협상을 타결했음에도,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 대표를 위시한 최고위원들이 '우리는 몰랐다'는 식으로 거리를 두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구도에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한 초선 의원은 "원내에서 어렵게 협상한 것을 당 지도부가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며 "일이 벌어지자 '손절'하는 듯한 모습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도부를 직격했다.

 

여기에 당내 다른 인사들의 발언은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김 원내대표가 '법사위와 협의했다'고 말한 데 대해 "유감"이라며 공개 반박했고, 이언주 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김 원내대표가 국정원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거절하기 어려울 땐 핑계를 대야 하는데, 그분이 너무 스트릭트(엄격)한 것 같다"며 협상 방식의 유연성 부족을 에둘러 지적했다. 이는 '투톱'의 갈등을 넘어, 당내 여러 세력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얽혀 있음을 보여주며, 이번 '살얼음판 휴전'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증명하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유리천장 깬 여성 감독들, 스릴러 판도를 바꾸다

외출’(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웨이브 ‘S라인’(안주영 감독),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이정림 감독) 등 주요 스릴러 작품들이 모두 여성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는 과거 로맨스나 가족 드라마에 주로 참여했던 여성 감독들이 대형 프로젝트와 스릴러 장르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뚜렷한 변화다.특히 여성 감독들은 스릴러 장르에서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통상 여성의 장르로 여겨지지 않던 스릴러에서 여성 감독의 강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은 "기존 스릴러가 사건 중심이었다면, 여성 감독의 스릴러는 여성 서사나 내면 심리 묘사에 충실해 좋은 결과를 내며 기회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은 연쇄 살인마 엄마와 형사 아들의 심리적 공조를, ‘북극성’은 한반도 정세 스릴러에 로맨스를, ‘S라인’은 히키코모리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다.이러한 변화에는 OTT 플랫폼의 영향도 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등 OTT 여성 가입자가 늘면서 과거의 잔인하고 거친 스릴러보다 심리 묘사가 풍부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윤석진 교수는 스릴러가 감성과 정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임을 강조하며, 여성 연출자들의 성공 사례가 누적되며 업계 인식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대중문화 평론가 하재근은 "사람 간의 관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는 한국형 스릴러 탄생에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내 대중문화 산업에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함께 다양한 시각과 감성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김헌식 평론가는 기존 스릴러 문법과의 상호 보완을 통해 특정 성별의 서사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 스토리를 추구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국내 스릴러 장르의 지평을 넓히고 K-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