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으로 만들고 입 다물어"…故 이재석 경사 동료들의 피눈물 나는 폭로

2025-09-15 11:32

 갯벌에 고립된 70대 노인에게 자신의 부력 조끼를 벗어주고 구조에 나섰다가 끝내 순직한 고(故) 이재석(34) 경사. 그의 희생적인 죽음 뒤에 해양경찰 지휘부의 조직적인 진실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국민적 추모 분위기 속에서, 그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닌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이 경사의 장례식장에서 비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동료 4명은 그동안 차마 밝히지 못했던 진실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사고 직후 파출소장으로부터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유족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달라"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최초의 함구령은 실종됐던 이 경사가 구조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던 급박한 순간에 내려졌다. 파출소장이 파출소 컨테이너 뒤로 팀원들을 불러 모아 "인천해경서장의 지시사항"이라며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한 팀원은 이 경사의 지인을 만났을 때도 서장과 파출소장이 직접 다가와 "유족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재차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동료들은 "처음에는 조사 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려 했으나, 유족들과 면담 후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동료들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현장 지휘 책임자였던 팀장의 늦장 대응이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한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경사는 고립된 노인을 발견하기 전인 오전 2시 43분, "물이 차올라 추가 인원 투입이 필요할 것 같다"고 팀장에게 분명히 보고했다. 이후 2시 56분, "요구조자는 거동이 안 돼 구명조끼를 벗어드렸다. 물은 허리까지 찬다"며 다급한 상황을 재차 알렸지만, 파출소의 추가 인력 투입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휴게시간을 마치고 복귀한 팀장이 이 경사의 다급한 보고 내용을 다른 팀원들에게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팀원들은 몇 분 뒤, 최초 신고자였던 드론업체로부터 재차 연락을 받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이 경사가 홀로 칠흑 같은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파출소 지휘 계통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던 셈이다.

 

이에 대해 해양경찰청은 "서장이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2인 1조 순찰'이라는 기본적인 안전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이 경사가 홀로 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경의 현장 대응 시스템과 지휘 책임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젊은 경찰관의 영웅적인 희생 뒤에 감춰졌던 지휘부의 무능과 진실 은폐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유리천장 깬 여성 감독들, 스릴러 판도를 바꾸다

외출’(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웨이브 ‘S라인’(안주영 감독),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이정림 감독) 등 주요 스릴러 작품들이 모두 여성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는 과거 로맨스나 가족 드라마에 주로 참여했던 여성 감독들이 대형 프로젝트와 스릴러 장르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뚜렷한 변화다.특히 여성 감독들은 스릴러 장르에서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통상 여성의 장르로 여겨지지 않던 스릴러에서 여성 감독의 강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은 "기존 스릴러가 사건 중심이었다면, 여성 감독의 스릴러는 여성 서사나 내면 심리 묘사에 충실해 좋은 결과를 내며 기회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은 연쇄 살인마 엄마와 형사 아들의 심리적 공조를, ‘북극성’은 한반도 정세 스릴러에 로맨스를, ‘S라인’은 히키코모리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다.이러한 변화에는 OTT 플랫폼의 영향도 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등 OTT 여성 가입자가 늘면서 과거의 잔인하고 거친 스릴러보다 심리 묘사가 풍부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윤석진 교수는 스릴러가 감성과 정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임을 강조하며, 여성 연출자들의 성공 사례가 누적되며 업계 인식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대중문화 평론가 하재근은 "사람 간의 관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는 한국형 스릴러 탄생에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내 대중문화 산업에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함께 다양한 시각과 감성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김헌식 평론가는 기존 스릴러 문법과의 상호 보완을 통해 특정 성별의 서사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 스토리를 추구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국내 스릴러 장르의 지평을 넓히고 K-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