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차단이 부른 '역대급 참사'…대통령 관저 불타고 국회는 잿더미, 네팔의 처참한 현실

2025-09-16 17:11

 단순한 소셜미디어(SNS) 접속 차단 조치가 한 나라를 전례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네팔에서 정부의 SNS 통제에 분노한 청년층이 촉발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국을 휩쓴 끝에, 마침내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임시 정부 구성이 본격화됐다. 특히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개혁 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입각하면서, 잿더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네팔의 힘겨운 여정이 시작됐다.

 

16일(현지시간), 수실라 카르키 임시 총리는 혼란에 빠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일부 내각 인선을 단행했다. 이는 부패와 경제 침체에 절망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젊은 세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카르키 총리의 첫 번째 승부수다. 특히 이번 인선은 'Z세대 맞춤형'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파격적이다.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라메슈워레 프라사드 카날은 최근까지 경제 개혁 권고위원회를 이끌며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준 인물이다. 부패한 기득권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그의 등장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선 개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카트만두 시장 고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공익 소송을 이끌었던 옴 프라카시 아리얄이 내무부 장관에, 고질적인 전력난을 해결한 공학자 출신의 쿨만 기싱 전 국영 전력공사 사장이 에너지부 장관에 각각 임명됐다. 현지 언론은 이들 세 명 모두 청렴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청년층 사이에서 '참신한 아이콘'으로 떠오른 인물들이라며, 이들의 입각이 성난 민심을 달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르키 총리가 이끄는 임시 정부는 내년 3월로 예정된 총선 전까지 국가를 안정시키고 개혁의 초석을 다지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카르키 총리는 "지금 네팔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국제 사회도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유엔은 과도기에 있는 네팔을 지원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새 내각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새 내각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위 과정에서 국가의 상징인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건물이 파괴되는 등 공공시설 복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틈을 타 벌어진 사상 초유의 대규모 탈옥 사태다. 네팔 경찰에 따르면, 시위의 혼란 속에서 교도소 문이 열리며 탈옥한 수감자 1만 4000여 명 중 재검거된 인원은 3723명에 불과하다. 여전히 1만 320명의 수감자들이 사회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복구와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임시 정부에 거대한 치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일, 정부가 유튜브, 페이스북, X(옛 트위터) 등 26개 주요 SNS 플랫폼 접속을 차단하며 시작됐다. 이는 부패와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달해 있던 젊은 세대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카트만두에서 시작된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 진압에 맞서 시위대는 대통령과 총리 관저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네팔 보건부는 이 과정에서 경찰 3명을 포함해 최소 72명이 목숨을 잃고 211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집계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정책 판단이 나라 전체를 거대한 비극과 혼란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듀..가나디' 닮은 백제 유물, 박물관 수장고에서 '인스타 스타' 된 사연

포트라이트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넓디넓은 미간에 콩알만 한 눈, 길게 늘어진 중안부 아래 소심하게 자리 잡은 입까지. 마치 인기 이모티콘 캐릭터 '듀..가나디'를 연상시키는 '하찮은' 생김새의 한 유물이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문화유산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이 신드롬의 주인공은 충남 부여의 옛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6~7세기경의 그릇받침이다. 표면 곳곳에 금이 가 있고, 형태는 투박하기 그지없으며, 심지어 구체적인 용도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정교하고 화려한 유물과는 모든 면에서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못난이' 그릇받침은 지금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이달 초 국가유산진흥원 공식 인스타그램에 이 유물의 사진이 게시되자, 불과 2주 만에 '좋아요' 수가 2만 7천 개를 돌파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해당 계정의 게시물 '좋아요'가 수백 개 수준에 머무는 것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댓글 창은 MZ세대의 재치 있는 놀이터가 되었다. "백제의 듀물(유물)", "듀..상님(주상님)" 등 이모티콘 캐릭터와 엮은 애정 어린 별명들이 쏟아지며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이러한 현상은 비단 '백제 듀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문화유산 향유의 흐름을 보면, 이처럼 정형화된 미(美)의 기준에서 벗어난 '엉뚱하고 못생긴' 유물들이 큰 사랑을 받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역사적 의미가 깊거나 조형적 완성도가 높은 지배층의 유물이 주목받던 과거의 관람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다.올해 3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순회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역시 M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례다. 약 1600년 전 신라와 가야의 장인들이 조물조물 빚어낸, 작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토우(土偶)들이 젊은 관람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전시를 기획한 노형신 학예연구사는 "기성세대와 달리, 조형적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보다 '허술하지만 친근한' 매력과 '각자의 개성'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MZ세대의 선호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박물관과 관련 기관들도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 "문화유산은 따분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깰 절호의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전시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이나피스퀘어'와 협업하여 전시장 곳곳을 귀여운 그림으로 꾸며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을 '투각인면문옹형토기(透刻人面文甕形土器)'로 교체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얼굴이 새겨진 6세기 신라 토기를 기관의 '얼굴'로 내세운 것이다.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완성도 높은 지배층의 유물이 관심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정형화된 미의식에서 벗어난 유물의 매력에 젊은 층이 재치 있는 현대적 해석을 더하며 즐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는 더 이상 문화유산을 배우고 익혀야 할 '학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즐기는 '놀이'의 대상으로 재창조하는 MZ세대의 새로운 문화 향유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