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장손, 미국 유학 접고 '이곳' 간다? 모두가 놀란 그의 선택!

2025-10-24 19:28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손이자 박지만 EG회장의 장남인 박세현(20) 씨가 미국 유학 생활을 잠시 접고 대한민국 해병대 1323기 병사로 자원입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새로운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7일 경북 포항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입소할 예정인 박 씨는 특히 해병대 내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과 뛰어난 체력을 요구하는 수색대를 지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군 생활을 했던 할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버지 박지만 회장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어서 이목이 집중된다. 젊은 나이에 해외 유학이라는 편안한 길 대신,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한 그의 결단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사회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 이행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박 씨가 지원한 해병대 수색대는 해병대사령부 직할의 특수부대로, '해병 중의 해병'이라 불릴 만큼 고도의 훈련과 능력을 요구한다.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대테러 작전 등 다양한 특수 임무를 소화해야 하기에 높은 체력과 정신력은 물론, 탁월한 수영 실력까지 필수적이다. 해병대 관계자에 따르면 수색대는 훈련 과정에서 체력과 수영 능력이 우수한 인원을 별도로 선발하며, 평균 경쟁률이 5대 1을 웃돌 정도로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로망'으로 꼽히는 부대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합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박 씨의 이번 도전은 그의 강한 군인 정신과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선택은 그가 단순한 명문가의 후광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세현 씨의 이번 해병대 자원입대 결정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군 경력과 비교되며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 대장으로 1963년 전역했으며, 아버지 박지만 EG회장 또한 육사 37기 출신으로 1986년 대위로 전역한 육군 장교였다. 이처럼 대대로 육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집안 내력에도 불구하고, 박 씨가 해병대, 그것도 가장 힘든 수색대를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개인적인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씨는 박지만 회장과 서향희 씨 사이에서 태어난 네 아들 중 장남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결심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는 그가 가문의 명예를 넘어,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가장 도전적인 길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세현 씨의 해병대 입대는 단순한 개인의 병역 이행을 넘어, 사회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조카 박 씨의 출생 소식에 "온 집안의 기쁨"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집안의 큰 기대를 받아온 인물이기에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 자제들의 병역 기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명문가 자손이 자발적으로 가장 힘든 길을 선택했다는 점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국가에 헌신하려는 그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건강한 병역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군 생활과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며, 그가 보여줄 리더십과 책임감이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된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일제강점기, 사라질 뻔한 국보 '원숭이 연적'! 그 뒤엔 '이 사람'이 있었다!

. 머리 구멍으로 물을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연적은 고려청자 특유의 은은한 비색과 어우러져 고려 문화의 품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으며, 199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2세기에 제작된 이 작품이 국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순탄치 않았다. 당시 수많은 우리 문화유산이 약탈과 파괴의 위협에 놓여 있었으며, 이러한 위기 속에서 예술과 문화를 사랑한 이른바 '컬렉터'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우리 보물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문화보국'의 신념으로 고미술품을 수집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은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지만, 그는 사실 일제강점기 초반 경성을 중심으로 근대 미술 시장을 주도했던 선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오늘날 '간송 컬렉션'을 완성한 '2세대 수장가'에 가깝다.'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또한 영국 출신 변호사 존 갯즈비가 일본에 머물며 수집했던 '고려청자 컬렉션'의 일부였다. 1937년 세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갯즈비는 고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소장품 처분에 나섰고, 이때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직접 일본 도쿄로 건너가 '갯즈비 컬렉션' 20점을 매입하여 국내로 들여왔다. 이 컬렉션 중 4점은 국보로, 3점은 보물로 지정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간송 선생의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개인적인 수집 활동을 넘어,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지키고 후대에 귀중한 유산을 전승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탁월한 안목과 굳건한 신념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국보로 마주하는 여러 걸작들을 영원히 잃었을지도 모른다.현재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는 간송 선생이 수집한 보물들과 그에 얽힌 비화들을 함께 조명하는 기획전 '보화비장: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대 수장가 7인의 컬렉션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특별한 기회다. 존 갯즈비를 비롯하여 민영익, 오세창, 안종원, 이병직 등 간송 선생 이전에 활약했던 '1세대 수장가'들의 수장품 총 26건, 40점이 공개되어, 당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인물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각 수장가들의 안목과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이번 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백미로는 존 갯즈비 컬렉션에 포함되었던 국보 도자들이 꼽힌다. 국보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을 비롯해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오리형연적',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 등이 한자리에 나란히 전시되어 고려청자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걸작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 해인 1856년에 쓴 만년의 걸작 '대팽고회(大烹高會)'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한나라 때 서체인 예서로 쓴 두 폭의 대련은 '최고의 반찬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가 함께하는 자리'라는 따뜻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병직 선생의 수장품을 간송 선생이 1937년 경매를 통해 확보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