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행정망 마비 사태, 한 달 만에 '일단' 봉합…뒷수습은 이제부터

2025-11-06 18:04

 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촉발된 사상 초유의 행정정보시스템 마비 사태가 한 달여 만에 중대 고비를 넘겼다. 정부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 시스템들이 대부분 정상화되었다고 판단, 최고 수준이었던 재난 위기경보를 '심각'에서 '경계'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국가적 비상 대응 체제였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해제하고, 실무 중심의 위기상황대응본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6일 중대본 회의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1·2등급 시스템이 모두 정상화됐다"고 밝히며, 길었던 비상 대응 국면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공식화했다.

 

이번 위기경보 하향 조정의 결정적 배경에는 국민 안전과 직결된 시스템들의 복구가 있었다. 생활 속 위험 요인을 신고하는 '안전신문고'가 전면 정상화되면서 국민 참여형 안전망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고, '119소방현장통합관리시스템'의 복구로 재난 현장에서의 효율적인 지휘 통제 체계가 원상 복귀되었다. 또한, 공공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정보공개시스템'이 정상화되면서 행정 투명성 저하에 대한 우려도 한숨 돌리게 되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화재로 멈췄던 전체 709개의 정보시스템 중 95.3%에 달하는 676개 시스템이 5일 오후 9시 기준으로 복구를 마쳤으며, 여기에는 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와 풍수해관리시스템 등 다수의 중요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직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남았다. 정부는 이번 위기경보 하향이 사태의 '종결'이 아닌 '안정화' 단계 진입을 의미한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 복구되지 않은 나머지 시스템들에 대한 작업 계획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윤호중 장관은 "대전센터 복구 대상 시스템은 11월 20일까지 모두 복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물리적 이전이 필요한 일부 시스템에 대해서는 "대구센터로의 이전이 필요한 시스템은 12월까지 복구를 목표로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전체 시스템의 100% 복구까지는 앞으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남은 과제들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한 달 넘게 이어온 총력 대응을 통해 행정망 마비라는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심각'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의 전환은 단순히 경보 수준의 변화를 넘어, 국가 기능이 비상 상황에서 통제 가능한 관리 상황으로 회복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디지털 행정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깊은 교훈을 남겼다. 정부는 남은 시스템의 완전한 복구는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번 위기경보 하향이 섣부른 안도가 아닌, 완전한 정상화와 시스템 재건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물, 바람, 땅…자연의 모든 것을 담았다,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한국무용 완전 정복

종합선물세트'라는 윤혜정 예술감독의 표현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역사를 지닌 8개의 전통 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개념인 '미메시스', 즉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한다는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각각의 춤은 물의 흐름(교방무), 바람의 형상(한량무), 땅의 기운(소고춤) 등 자연의 본질적인 요소를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단순한 춤사위를 넘어, 자연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해 온 우리 전통과 민속의 깊은 뿌리를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엄선된 7개의 춤에 마지막으로 살풀이춤을 더해 완성된 8개의 레퍼토리는 한국 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를 증명한다.'미메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잘 차려진 뷔페처럼 관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춤을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첫 장을 여는 교방무가 기생들의 유려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물의 흐름을 그려낸다면, 곧이어 펼쳐지는 한량무는 불었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바람처럼 변화무쌍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태평소 가락과 어우러져 폭발적인 흥을 분출하는 소고춤의 역동성은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종교적 경건함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승무는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처럼 정적인 여백의 미와 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성은 한국 무용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마저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각 춤의 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8개 중 6개의 음악을 새로 작곡한 유인상 음악감독의 미니멀한 접근 방식 또한 춤 본연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이번 공연은 시각적인 즐거움 또한 놓치지 않았다. 김지원 의상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의 '하후상박(上薄下豊)' 실루엣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무대 의상을 완성했다. 특히 한량무에서는 K팝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의상에 전통 갓의 챙을 유난히 넓게 제작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버선발의 섬세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속치마를 시스루 소재로 만들거나 무릎, 뒤꿈치를 과감히 노출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전통을 어느 선까지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물로,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각 춤의 특징을 살린 의상은 무용수들의 몸짓과 결합하여 하나의 완성된 예술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미메시스'는 스타 무용수의 참여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현대무용가 기무간이 서울시무용단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검무와 태평무 무대에 올랐다. 그는 "한국 무용은 정서적으로 깊은 내면을 다루며,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멈춤의 미학'이 있는 춤"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공연을 통해 현대 무용과 한국 무용의 본질적인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에너지를 채워서 밖으로 분출하는 현대 무용과 달리, 무용수가 감정을 비워낸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무용의 정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메시스'는 전통의 재현을 넘어, 현대적인 해석과 스타 무용수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춤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의미 있는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