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농축·재처리 '지지' 얻어냈다…'핵주권' 향한 첫발 뗐나

2025-11-14 17:26

 100일 넘게 이어져 온 한국과 미국 간의 팽팽한 관세·안보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은 14일,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실무 협상을 통해 도출된 합의 사항을 담은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를 동시에 발표하며 길었던 협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팩트시트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 합의를 문서 형태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을 더한다. 자료에는 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와 상호 관세율 조정 등 경제 현안부터 원자력 잠수함 건조 승인과 같은 민감한 안보 이슈까지 양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들이 총망라되었다.

 

경제 분야 합의의 핵심은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와 이에 따른 관세 조정이다. 한국은 조선 협력에 1500억 달러, 에너지·반도체·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 2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대신 현재 25%의 높은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는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 관세율을 15%로 인하받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는 사실상 지난 8월부터 적용 중이던 상호관세율 15% 체제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달 1일부터 소급 적용될 전망이라 국내 자동차 업계는 한숨 돌리게 됐다. 특히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향후 미국의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보장받는 '최혜국 대우'에 가까운 조항을 확보하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였다.

 


안보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합의들이 도출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 건조를 공식 승인하고, 연료 조달 방안까지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대목이다. 이는 한국의 군사적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또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나아갈 수 있는 절차를 미국이 지지한다는 합의를 끌어내 '핵 주권' 확대를 향한 오랜 숙원의 첫발을 떼게 됐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3.5%로 증액하고,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동맹 관계의 현대화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 합의로 분석된다.

 

이번 팩트시트는 양국의 이해관계를 넘어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2018년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협력하기로 한 점, 그리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독려한다"는 문구를 명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한미동맹이 단순한 군사 동맹을 넘어 역내 안정과 평화에 공동으로 기여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이번 협상은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주력 산업의 관세 부담을 덜고 안보 분야에서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자율성과 역량을 확보하는 '빅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국보 7점이 미국에?\"…'이건희 컬렉션' 해외 나들이 라인업 보니

린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품의 첫 해외 전시인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가 현지시간으로 15일,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다고 밝혔다. 당초 지난 8일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미국 의회의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세계 최대 박물관 재단인 스미스소니언 산하 주요 박물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개막이 잠정 연기된 바 있다. 국가적 기증의 의미를 세계에 알리는 첫발을 떼는 중요한 순간이 외부적 요인으로 지연되며 우려를 낳았지만, 셧다운 사태가 해결됨에 따라 한국 문화유산의 정수를 선보이는 자리가 다시 마련된 것이다.이번 워싱턴 전시의 백미는 단연 국보급 문화유산의 향연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약 2만 1,000여 점의 방대한 기증품 중에서 엄선된 보물들이 미국 관람객을 맞이한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자 대한민국 국보인 '인왕제색도'(1751)를 필두로,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1805) 등 국보 7건과 보물 15건을 포함한 총 172건, 297점의 문화유산이 출품된다. 한국 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명작들이 이처럼 대거 해외 나들이에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한국에서도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귀한 작품들을 미국 심장부에서 직접 관람할 기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수집가의 안목과 철학, 그리고 사회 환원이라는 나눔의 가치를 함께 조명한다.전통의 아름다움이 과거의 숨결을 전한다면,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은 역동적인 시대정신을 담아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기증품 중 박수근의 '농악'(1960), 이응노의 '군상'(1985),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7'(1973) 등 근현대 미술 24점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백남순의 '낙원'(1936년경)과 같이 서구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독창적으로 표현해 낸 작품들은, 한국 미술이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면서도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한국의 문화와 미술이 역사적 다양성과 혼성성을 포용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감을 보여주는 뜻깊은 전시"라고 강조했듯, 이번 순회전은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 미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저력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워싱턴에서의 첫선을 시작으로 '이건희 컬렉션'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대장정에 오른다. 내년 2월 1일까지 워싱턴 전시를 마친 후, 곧바로 시카고로 자리를 옮겨 내년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시카고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이후 대서양을 건너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9월 10일부터 2027년 1월 10일까지 장기간의 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처럼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앞다투어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위상이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한 개인의 고귀한 기증으로 시작된 문화적 선물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이 함께 향유하는 인류의 자산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