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참사' 지역 투표율 '꼴찌'…분노한 민심, 투표용지 대신 백지로 보여줬다
2025-12-08 17:44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아파트 화재 참사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홍콩이 입법회(의회) 선거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8일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30분부터 16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입법회 선거의 잠정 투표율은 31.9%로 집계됐다. 이는 중국이 홍콩 선거 제도를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뜯어고친 뒤 2021년 치러진 첫 선거에서 기록했던 역대 최저 투표율(30.2%)을 겨우 1.7%포인트 웃도는 수치로, 사실상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도 선거를 밀어붙였지만, 시민들의 싸늘한 외면을 확인하는 데 그친 셈이다.특히 시민들의 분노와 무관심은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역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26일,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웡 푹 코트'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타이포 지역이 포함된 신계 동북부 선거구의 투표율은 선거 마감 한 시간 전인 전날 오후 10시 30분 기준으로 29.72%를 기록했다. 이는 홍콩의 10개 선거구역 중 유일하게 30%를 밑도는 수치로,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선거 강행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직접적인 반감이 투표 거부로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참사의 아픔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투표는 그저 공허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홍콩 유권자의 약 60%가 범민주 진영에 표를 던져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처참한 투표율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선거제 개편 이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후보가 완전히 사라지자, 대다수 유권자가 선거 자체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화재 참사까지 발생하며 민심이 최악으로 치닫자, 중국과 홍콩 당국은 민심을 수습하기는커녕 비판 여론을 '반중·반정부' 세력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단속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억누른 채 치러진 '반쪽짜리' 선거는, 홍콩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단면이 되고 말았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