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300개 행사…중국, APEC 앞세워 '경제 영토' 과시한다
2025-12-12 18:34
올해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열기가 내년에는 중국으로 이어진다. 차기 APEC 정상회의는 2026년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중국의 '혁신 수도'로 불리는 남부 도시 선전(深圳)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선전에서 열린 APEC 고위급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중국이 본격적인 'APEC 중국의 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중국은 내년 APEC 정상회의의 대주제를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건설, 공동 번영 촉진'으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3대 우선 협력 분야로 '개방', '혁신', '협력'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동 운명체를 구축하고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자는 중국의 원대한 비전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혁신'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개최 도시로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선전을 선택한 것은, 이번 APEC을 통해 자국의 첨단 기술력과 미래 산업 비전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의장직을 공식 인계받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차기 회의 개최지로 선전을 직접 지목하며 강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경주에서 선전으로 이어지는 APEC 릴레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질서 속에서 중국의 역할과 리더십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중국이 자신의 안방에서 개최하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어떤 새로운 질서와 비전을 제시할지 전 세계의 이목이 '혁신의 도시' 선전으로 집중되고 있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