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붕괴 주범' vs '최소한의 존엄'…결국 전쟁으로 끝나는 서울 학생인권 논쟁

2025-12-16 18:33

 서울시의회가 이미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또다시 가결시키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16일 본회의를 열어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폐지안을 재차 통과시켰다. 이는 지난해 4월 가결된 폐지안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재의를 요구하고 대법원이 집행정지까지 인용해 효력이 멈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같은 안건을 밀어붙인 것으로, 행정력과 예산을 낭비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폐지안 처리 과정은 시작부터 파열음으로 가득했다. 해당 안건은 여야 합의 없이 최호정 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반발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지거나 아예 본회의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항의의 뜻을 표했다. 표결 결과는 재석 86명 중 찬성 65, 반대 21로,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지며 폐지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는 지난달 교육위원회에서 기습적으로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킨 데 이은 일방적인 의회 운영이라는 비판에 더욱 불을 지폈다.

 


양측의 입장 차는 평행선을 달렸다. 국민의힘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과도하게 강조해 교권 붕괴를 초래하는 등 시대에 맞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을 특별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하자는 기본적 요구이며, 교권 침해의 원인으로 왜곡되고 있다고 맞섰다. 2012년 제정되어 학생이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조례의 근본 취지를 두고 양측의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폐지안이 통과되자마자 서울시교육청은 즉각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회 재적 의원 111명 중 75명이 국민의힘 소속이라, 재의 요구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교육청은 또다시 대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함께 본안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동일한 조례 폐지안 두 건이 동시에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학교 현장의 혼란과 행정력 낭비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치적 목적을 위한 무리한 조례 폐지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역사책에선 차마 알려주지 못한 장영실의 '진짜' 삶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담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역사에서 지워진 장영실이 사실은 조선을 떠나 르네상스가 꽃피우던 이탈리아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 되었다는 파격적인 설정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역사 기록의 마지막 한 줄, 그 너머의 삶을 무대 위에 화려하게 부활시키며 관객들을 새로운 진실 혹은 상상 속으로 이끈다.1막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노비 출신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삶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무대 위에는 자격루, 혼천의 등 그의 위대한 발명품들이 감각적으로 재현되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세종과의 관계는 단순한 군신 관계를 넘어 깊은 우정으로 그려지며 애틋함을 더한다. 하이라이트는 장영실의 발목을 잡았던 '안여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작품은 이 사건이 장영실을 벌하기 위함이 아닌, 시기하는 대신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주기 위한 세종의 눈물겨운 선택이었음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관계에 깊이를 더하고 2막의 파격적인 전개에 설득력을 부여한다.2막의 배경은 조선에서 르네상스의 심장부인 이탈리아 피렌체로 단숨에 이동한다. 세종의 배려로 목숨을 구하고 머나먼 이국땅에 도착한 장영실이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 그의 스승이 되고, 조선의 앞선 과학 기술을 유럽에 전파했다는 과감한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심지어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으로 알려진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속 주인공이 바로 장영실이었다는 설정은 이 대담한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시공간의 급격한 변화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무대 디자인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입체적인 모습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의 상징적인 건축미까지, 화려한 볼거리는 이야기의 빈틈을 채우며 몰입감을 극대화한다.물론 방대한 소설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2막의 전개가 다소 급하게 느껴지고,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배우들의 폭발적인 열연은 이러한 서사의 공백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탈리아에 홀로 남아 조선과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넘버 '그리웁다'는 천재 과학자의 모습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외로움과 고뇌를 오롯이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꿈과 재능이 있어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장영실'에게, 이 작품은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 손을 뻗을 용기를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