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 깃든 '이 건물', 230여 년 만에 보물로 인정

2025-12-19 20:05

 국가유산청이 고려시대 석탑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요한 기준점들을 국보로, 그리고 그동안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조선 후기 사찰 누각들을 보물로 지정하며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각각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과 고려 초기 석탑의 확립된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우리나라 석탑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다. 이와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순천 송광사 침계루', '안동 봉정사 만세루', '화성 용주사 천보루'는 조선 후기 사찰의 다양한 건축 양식과 역사적 배경을 품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보로 승격된 두 석탑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명확한 시대적 증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비록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법인국사탑비의 비문 내용과 조각 양식을 통해 고려 광종 시절인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에 사실적으로 조각된 사자상과 유려한 팔부중상은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낮고 넓적한 옥개석 등에서 고려 시대의 새로운 기법을 명확히 보여주는 과도기적 특징을 지닌다. 반면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1011년 건립이라는 명확한 시기를 알려주는 190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학술적 가치가 압도적이다. 기단부의 십이지신상부터 팔부중상, 1층 탑신의 금강역사상에 이르기까지, 다른 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조각 배치는 당시의 불교 교리를 충실히 반영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사찰 누각 3건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건축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찰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보물 지정 사례가 드물었던 누각 건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것이다. '순천 송광사 침계루'는 승려들의 강학 공간이라는 독특한 기능과 함께, 전라도에 위치하면서도 경상도 지역의 건축 기법이 확인되어 당시 지역 간 건축 기술 교류의 증거를 제시한다. '안동 봉정사 만세루'는 1680년 건립 이후 큰 변형 없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여러 편액 기록을 통해 건물의 변천 과정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화성 용주사 천보루'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왕실 원찰(願刹)의 부속 건물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1790년 건립된 이 누각은 아래층을 통해 진입하는 독특한 구조와 함께, 궁궐 건축에서 나타나는 유교적 요소가 사찰 건축에 혼합된 원찰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사찰 누각을 넘어, 조선 후기 왕실의 불교관과 건축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국가유산청은 이들 3건의 누각에 대해 30일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적으로 보물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며, 이번 지정을 통해 우리 건축사의 다채로운 면모가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평소보다 관람객 25% '껑충'…워싱턴DC를 뒤흔든 'K-미술'의 위엄

고 있다. 이는 같은 박물관에서 열렸던 비슷한 규모의 다른 특별전과 비교했을 때 약 25%가량 많은 수치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컬렉션의 높은 예술적 가치가 맞물려 만들어 낸 쾌거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 초반부터 현지 관람객과 주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쏟졌으며, 지금도 관람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이번 전시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는 북미 지역에서 약 40여 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큰 의미를 가졌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국보 7건과 보물 15건을 포함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고미술과 현대미술 작품 약 330점이 워싱턴의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특히 황선우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큐레이터는 어린 학생부터 노년층까지 매우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중에서도 사찰 의식에 사용되던 북 받침대인 '법고대'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 '더피'와 닮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예상치 못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한국 미술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키스 윌슨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아시아미술부장은 "조선 시대 초상화가 보여주는 극도로 섬세한 표현과 높은 완성도에 관람객들이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번 전시가 한국 미술의 정수를 제대로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뜨거운 관심은 박물관 문화상품, 이른바 '뮷즈(굿즈)' 판매량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청자를 본떠 만든 접시 세트나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조명 등 전시 시작과 함께 비치했던 상품들은 개막 단 1주일 만에 모두 팔려나갔으며, 현재까지 총주문액은 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국립중앙박물관과 삼성전자는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인왕제색도', '십장생도', '호랑이와 까치' 등 주요 출품작 20건의 고화질 이미지를 삼성 아트 스토어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며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리고 있다. 워싱턴에서의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계속되며, 이후 2026년에는 미국 시카고박물관과 영국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의 미를 알리는 해외 순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17일 현지에서 열린 개막 축하 행사에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강경화 주미대사 등이 참석해 이번 전시의 성공적인 출발을 함께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