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 한다" 뒷담화 당하던 안세영, 실력으로 증명했다

2025-12-23 18:36

 한국 배드민턴이 42년 만에 찾아온 눈부신 황금기의 배경에는 선수들의 땀방울뿐만 아니라, 그들을 옥죄던 낡은 관행의 해소라는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박주봉 감독은 '왕중왕전'이라 불리는 2025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에서 3개의 금메달을 휩쓰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돌아온 직후, 이러한 성공의 핵심 비결 중 하나로 선수들의 오랜 숙원이던 '스폰서 문제 해결'을 직접 언급했다. 이는 단순히 기량이 좋은 선수들을 모아놓는 것을 넘어, 그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월드투어 파이널의 성과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 남자 복식의 서승재-김원호 조, 그리고 여자 복식의 이소희-백하나 조가 나란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며 세계 배드민턴계를 놀라게 했다. 1983년 그랑프리 파이널로 시작된 이 대회의 42년 역사상 한국이 3개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주봉 감독조차 "사실 3종목까지는 기대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예상 밖의 쾌거였지만, 그 이면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편안하게 훈련할 수 있는 대표팀과 협회의 환경이 조성되어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것 같다"고 진단하며, 특히 "스폰서 문제들이 선수들이 원하는 쪽으로 해결된 부분도 하나의 큰 동기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이 언급한 '스폰서 문제'는 한국 배드민턴계의 오랜 갈등 요소였다. 특히 갈등의 중심에는 에이스 안세영이 있었다. 그녀는 지난해 파리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개인 후원 계약의 어려움을 포함한 대표팀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불합리한 운영 방식을 용기 있게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전임 집행부는 문제 해결은커녕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안세영을 압박했다. 심지어 전임 집행부의 핵심 관계자들은 국회에서 "안세영이 국제대회에서 인사를 안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며,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한 선수를 '내부고발자'로 낙인찍고 인성 문제로 몰아가려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선수들의 권익보다 조직의 기득권을 우선시했던 과거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그러나 올해 '셔틀콕 황제' 김동문이 대한배드민턴협회 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선수 출신 회장은 누구보다 선수들의 고충을 잘 이해했고, 가장 먼저 낡은 규정에 칼을 댔다. 김 회장은 선수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난 5월, 개인 스폰서십을 전격 허용했다. 이 결정으로 안세영은 물론 서승재, 김원호 등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용품 후원 계약 등을 통해 날개를 달았고, 이는 고스란히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박주봉 감독이 지적했듯, 선수를 옭아매던 족쇄를 풀어준 것이 42년 만의 역사를 쓰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된 셈이다.

 

 

 

문지안 기자 JianMoo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우리가 잃어버렸던 '말'을 되찾다, '말모이' 원고 실물 공개

고 있다. 이번 전시들은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되찾으려 했던 치열한 노력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온 '밤'이라는 시간의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조명하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첫 번째 특별전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는 제목 그대로 일제강점기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마주한 해방 공간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잃어버렸던 우리말과 글, 왜곡된 역사, 그리고 흩어진 공동체의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생생한 유물과 함께 보여준다. 1부에서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와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 영인본을 통해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노력을 기리고, 광복 후 부여받은 국제 무선호출부호 'HLKA'가 새겨진 스피커를 통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했음을 알린다. 2부에서는 조선총독부에게 빼앗겼다가 되찾은 국새 '칙명지보'와 우리 손으로 직접 진행한 최초의 발굴조사인 경주 호우총 출토 유물을 통해 단절되었던 역사의 연속성을 잇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이순신 장군 관련 병풍 '팔사품도' 등을 통해 민족의 영웅을 기리고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또 다른 특별전 '밤 풍경'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밤'이라는 시간이 지녔던 다층적인 의미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이 전시는 조선시대의 야간 통행금지 제도였던 '야금'에서부터 시작해, 미군정이 공포한 야간통행금지령을 거쳐 1982년 마침내 통금이 해제되기까지, 밤을 둘러싼 제도적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통금 시절의 웃지 못할 다양한 일화를 담은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 원화는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늦은 밤 PC통신으로 새로운 세상과 접속했던 추억을 소환하는 '하이텔 단말기'는 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밤의 풍경을 바꾸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달을 바라보며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독립운동가 김여제의 시 '추석'이 실린 상해판 독립신문은, 누군가에게는 억압의 시간이었던 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는 시간이었음을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준다.이 두 전시는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하게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역사 되찾기' 전이 국가적 차원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거시적인 서사를 다룬다면, '밤 풍경' 전은 통제와 자유, 그리움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개인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 시대의 흔적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본다. 관람객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귀중한 사료와 유물들을 통해 잊고 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마주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며 대한민국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역사 되찾기'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밤 풍경' 전시는 내년 3월 22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