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턱밑까지 추격' 한전 보너스 승점 3점의 기적

2026-02-03 13:47

 배구 코트 위에 흐르는 긴장감은 때로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주전 리베로의 갑작스러운 부상이라는 악재를 만난 한국전력이었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2위 자리를 향한 강력한 스파이크를 꽂아 넣었다. 한국전력은 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의 5라운드 맞대결에서 세트스코어 3대1로 승리하며 값진 승점 3점을 챙겼다. 이번 승리로 3위 한국전력은 15승 11패 승점 43점을 기록하며, 2위 대한항공을 승점 4점 차이로 바짝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경기 전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올 시즌 우리카드를 상대로 1승 3패라는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었던 데다, 수비의 핵심인 리베로 정민수가 손가락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당장 한 경기를 책임져야 할 리베로의 공백은 권영민 감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법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등장했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장지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권영민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장지원의 실력을 믿는다면서도 오랜만에 선발로 나서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지원은 코트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리시브 효율 40%라는 숫자로 증명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리시브는 세터 하승우의 손끝을 가볍게 만들었고, 이는 곧 화끈한 공격력으로 이어졌다. 권 감독은 경기 후 장지원에게 80점을 주며, 나머지 20점은 긴장한 탓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긴장했을 제자를 다독이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수비가 안정되자 공격수들의 화력 쇼가 시작됐다. 외국인 선수 베논은 무려 34득점을 몰아치며 공격 성공률 62.37%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우리카드의 코트를 폭격했다. 여기에 발목 인대 파열 부상을 털고 돌아온 김정호의 활약은 한국전력 팬들을 더욱 열광하게 했다. 서브 에이스 3개를 포함해 17득점을 올린 김정호는 키의 한계를 뛰어넘는 탄력과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상대 세터 한태준과의 수 싸움에서 자신감 있게 공격을 시도하며 팀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세밀한 전술 변화도 빛났다. 세터 배해찬솔은 예리한 서브로 상대 수비 라인을 흔들어 놓으며 권 감독의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권 감독은 배해찬솔의 서브 능력을 높게 평가하며, 플로터 서브에 약점이 있는 상대를 만날 때마다 전술적인 카드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아시아쿼터로 합류한 무사웰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성실함과 빠른 눈치를 겸비한 무사웰은 미들블로커 포지션에서 속공을 때려주며 상대 블로킹 분산을 유도했고, 이는 베논에게 쏠릴 수 있었던 공격 점유율을 적절히 나누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 한국전력의 고공행진 뒤에는 세터 하승우의 안정감 있는 조율과 무사웰의 영리한 플레이가 자리 잡고 있다. 권 감독은 하승우가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고, 무사웰이 합류하면서 사이드아웃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무사웰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이팅 넘치는 모습과 훌륭한 체공 시간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제 한국전력의 시선은 오는 7일 펼쳐질 대한항공과의 맞대결로 향한다. 만약 대한항공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면 승점 차를 단 1점으로 줄이며 리그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권 감독은 우리카드라는 난적을 꺾은 것이 매우 중요했다며,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준 덕분에 대한항공전은 오히려 부담 없이 치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팬들은 벌써부터 다가올 대한항공전의 뜨거운 승부를 기대하고 있다. 부상 악재를 극복하고 단단해진 조직력을 보여준 한국전력이 과연 대한항공의 날개를 꺾고 2위 탈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배구 코트를 수놓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팬들의 함성이 어우러질 장충의 밤은 앞으로도 더욱 뜨겁게 타오를 전망이다.

 

문지안 기자 JianMoo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정명훈도 반한 임윤찬의 슈만..\"181년 전 낭만 재현\"

는 격언은 결국 하나의 작품을 어떤 소리의 풍경으로 그려내는가가 연주자 고유의 철학이자 역량임을 방증한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평택아트센터 개관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슈만의 곡으로 보여준 무대는 이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해낸 경이로운 순간이었다.이날 밤은 클래식 팬들에게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문을 연 평택아트센터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이자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그리고 임윤찬이라는 한국 클래식계의 거장과 신성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특히 1548년 창단되어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대의 무게감은 압도적이었다.지휘봉을 잡은 정명훈은 2012년부터 수석객원지휘자로 깊은 인연을 맺어온 슈타츠카펠레를 이끌며 임윤찬과 함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무대에 올렸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숙성된 독일 정통의 깊은 사운드와 젊은 거장 임윤찬의 예리하고도 섬세한 해석이 조우하며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임윤찬이 한국 관객 앞에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었다. 비록 2023년 프랑스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같은 곡을 연주한 경험이 있었으나 국내 팬들에게는 늘 갈증으로 남아있던 레퍼토리였다. 게다가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이 184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때 드레스덴을 뿌리로 둔 악단과 임윤찬의 만남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고 있었다.19세기 당시 화려한 기교만을 앞세운 협주곡들이 유행하던 풍조 속에서 슈만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립하는 대신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서정성에 집중했다. 임윤찬은 이러한 슈만의 의도를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관악기가 나지막이 던진 선율을 특유의 맑고 투명한 터치로 받아내는 모습은 마치 두 존재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한 음이 가슴을 울리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그의 과거 발언처럼 이날의 타건은 음표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숭고한 작업과도 같았다.특히 1악장 후반부의 독주 구간인 카덴차에서 임윤찬의 에너지는 폭발했다. 쉼 없이 몰아치는 건반 위로 응축된 정서가 쏟아져 나오자 객석은 순식간에 그의 환상적인 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격정적인 1악장이 마무리되자 지휘자 정명훈은 곁에 선 임윤찬을 대견한 듯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장이 신예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무대 위에서 피어난 세대를 초월한 교감의 순간이었다.2악장에서 임윤찬은 다시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악단의 소리가 충분히 빛날 수 있도록 여백을 두며 음악의 흐름을 조율했다. 첼로가 이어받은 낭만적인 선율이 공연장 공기를 부드럽게 감쌀 때 임윤찬의 피아노는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며 깊은 정서적 울림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3악장에서는 다시 활기 넘치는 리듬감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연주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 음의 잔향이 사라지기도 전에 객석 곳곳에서는 뜨거운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명훈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임윤찬을 꼭 안아주었고 임윤찬 역시 수줍은 미소와 함께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쏟아지는 환호에 화답하며 다시 건반 앞에 앉은 임윤찬은 앙코르곡으로 고다르의 조슬랭의 자장가를 선택했다. 앞선 협주곡의 격정적인 에너지를 차분하게 달래주는 감미로운 여운은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공연 후반부에서는 정명훈과 슈타츠카펠레가 독일 정통 사운드의 위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으로 시작해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공연장의 개관을 축하하는 화려한 축포와 같았다. 특히 금관 악기의 웅장한 포효와 현악기군의 정교한 앙상블은 새로 개관한 평택아트센터의 훌륭한 음향 설계와 만나 더욱 선명하게 각인됐다.소리가 공간 안에서 흩어지지 않고 선명하게 맺히는 평택아트센터의 홀은 첫 무대부터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무대 양옆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가 관객의 몸을 감싸 안듯 퍼져나가는 입체적인 공간감은 향후 이 공연장이 경기 남부권의 새로운 클래식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임을 예고했다.새로운 공간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인 날에 임윤찬이 남긴 슈만의 선율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관객들은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소리의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음악이 주는 위로와 환희를 만끽했다. 젊은 천재가 그려낸 슈만의 낭만은 그렇게 평택의 밤을 금빛으로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