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판 '난쏘공'의 등장, 가난을 팔아야 하는 시대

2026-03-10 13:15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으로 사랑과 이별을 그려온 이유리 작가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첫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가난과 주거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경쾌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내려놓고, 가장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다.

 

소설은 땅에 발붙일 곳 없어 하늘 위 구름에 무허가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기발한 설정은 작가가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며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을 보며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다'는 박탈감과 '차라리 공짜인 구름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작품의 씨앗이 되었다.

 


작품 속 '구름'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공간이다. 유독 물질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분홍빛 구름은 멀리서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위태롭고 가난한 현실 그 자체다. 이는 가난을 멀리서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외부의 시선과, 그 안에서 고통받는 당사자의 삶 사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스스로 '난쏘공'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고 밝힐 만큼, 두 작품은 도시 빈민의 삶이라는 궤를 같이한다. 다만, '난쏘공'의 영희가 입주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았다면, '구름 사람들'의 주인공 하늘은 가난을 전시하고 후원금을 받아 땅에 집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를 씁쓸하게 반영한다.

 


이번 작품은 사랑과 연애('브로콜리 펀치'), 이별('비눗방울 퐁') 등 개인의 감정에 집중했던 작가의 관심사가 가난과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작가 스스로도 나이를 먹으며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결핍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을 예고했다.

 

비록 이번 작품을 통해 깊은 사회적 통찰을 보여주었지만, 이유리 작가 특유의 유쾌한 상상력은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현재 우주생물을 치료하는 지구인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SF를 집필하며 또 다른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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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편견이 만연했던 클래식계의 장벽을 허문 선구자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우뚝 섰다.그의 여정은 시작부터 도전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말, 아직 학생이던 딸의 재능을 확신한 아버지가 무작정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를 찾아가 데뷔 방법을 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서양 고유의 문화인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인 성악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그는 결국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모두 섭렵한 최초의 동양인 프리마돈나가 되었다.조수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한국인 최초 그래미상 수상,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 수상, 비(非)이탈리아인 최초 국제 푸치니상 수상 등 그의 발자취는 곧 K-클래식의 새로운 역사였다. 이러한 성과는 타고난 재능과 지독한 노력, 그리고 승부욕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다.물론 그의 뒤에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들려주며 운명을 정해준 어머니와, 20대 신예였던 그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 극찬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바로 그들이다.자신이 받았던 사랑과 기회를 이제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그는 202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제 성악 콩쿠르를 창설하며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단순히 상금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데뷔 40년이 흘렀지만, 60대의 거장은 여전히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경험에 안주하는 것을 가장 위험한 일로 여기며, 예술에 관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시간은 여전히 세계 무대를 향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