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 놀이터’ 두바이, 유령도시 됐다
2026-03-12 13:41
중동 지역을 휩쓴 전쟁의 포화가 세계적인 부의 상징이던 두바이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불과 2주 만에 화려했던 도시는 외국인과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유령 도시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안전과 부의 피난처로 여겨졌던 명성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말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한 대규모 반격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기가 UAE 영토에 떨어졌고, 방공망이 대부분을 요격했음에도 일부가 군사기지와 산업단지에 명중하며 직접적인 피해를 낳았다. 특히 두바이 공항의 운영이 한때 마비되고, 랜드마크인 '팜 주메이라' 인근 호텔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전 세계로 송출되며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이번 사태는 석유 없이 관광과 금융 산업으로 부를 쌓아 올린 두바이의 경제 모델에 치명타를 입혔다. 연간 44조 원에 달하는 관광 수입이 하루아침에 증발할 위기에 처했으며, 세금을 피해 자산을 이전해 온 전 세계 억만장자들마저 안전을 찾아 이탈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생명줄과도 같았던 자본과 사람이 동시에 빠져나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전쟁의 불길이 중동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곳까지 번지면서, 두바이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던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사막 위에 세워진 기적의 도시는 이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대한 편견이 만연했던 클래식계의 장벽을 허문 선구자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우뚝 섰다.그의 여정은 시작부터 도전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말, 아직 학생이던 딸의 재능을 확신한 아버지가 무작정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를 찾아가 데뷔 방법을 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서양 고유의 문화인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인 성악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그는 결국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을 모두 섭렵한 최초의 동양인 프리마돈나가 되었다.조수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한국인 최초 그래미상 수상, 동양인 최초 이탈리아 황금 기러기상 수상, 비(非)이탈리아인 최초 국제 푸치니상 수상 등 그의 발자취는 곧 K-클래식의 새로운 역사였다. 이러한 성과는 타고난 재능과 지독한 노력, 그리고 승부욕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다.물론 그의 뒤에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을 들려주며 운명을 정해준 어머니와, 20대 신예였던 그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 극찬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바로 그들이다.자신이 받았던 사랑과 기회를 이제는 후배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그는 2024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제 성악 콩쿠르를 창설하며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단순히 상금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데뷔 40년이 흘렀지만, 60대의 거장은 여전히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경험에 안주하는 것을 가장 위험한 일로 여기며, 예술에 관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시간은 여전히 세계 무대를 향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