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기사 폭행' 왕대륙, 보석 석방... '재벌 2세 지인'이 사주했다
2025-03-06 11:14
영화 '나의 소녀시대'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대만 배우 왕대륙이 '살인미수' 혐의를 벗고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석방 과정에서 보인 미소와 침묵으로 인해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대만 ET투데이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왕대륙은 신베이 지방법원에 500만 대만달러(한화 약 2억 2000만 원)의 보석금을 납부하고 석방되었다. 당초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되었던 왕대륙의 혐의는 상해 교사 및 불법 개인정보 사용 혐의로 변경되었다. 이는 검찰이 왕대륙의 직접적인 폭행 가담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석방 당시 왕대륙의 태도였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모아 인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취재진은 "폭행을 선동했는가?", "피해자에게 사과할 마음은 없는가?"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왕대륙은 일절 답변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태도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기미 없이 자신의 무죄만을 주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4월, 왕대륙이 공항에서 우버를 통해 테슬라 차량을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왕대륙은 운전기사의 운전 방식에 불만을 품고 거친 언쟁을 벌였다. 단순한 말다툼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은 왕대륙이 자신의 재벌 2세 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왕대륙의 '폭행 사주' 혐의는 그가 병역 기피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우연히 드러났다. 경찰은 왕대륙의 휴대전화를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사주하는 내용의 메시지와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발견했다. 이는 왕대륙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왕대륙은 빅뱅 전 멤버 승리와의 친분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승리가 '버닝썬 게이트'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어, 왕대륙의 이번 사건은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권시온 기자 kwonsionon35@trendnewsreaders.com

스타브 쿠르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신화나 종교가 아닌,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의 민낯을 화폭에 담아 예술계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쿠르베의 붓은 언제나 평범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했다. 당시 거대한 캔버스는 영웅이나 신들의 서사를 위해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는 그 특권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길가에서 돌을 깨는 인부의 고된 노동(‘돌 깨는 사람들’)과 시골 마을의 평범한 장례식 풍경(‘오르낭의 장례식’)을 기념비적인 크기로 그려내며, 일상의 현실을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그의 반항적인 시선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더욱 도발적으로 빛났다. 이상적으로 가공된 매끈한 여신이 아닌, 살집 있고 현실적인 시골 여성의 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목욕하는 여인들’은 엄청난 스캔들을 낳았다. 평단은 ‘저속하다’고 비난했지만, 쿠르베는 꾸며진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벌거벗은 진실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이러한 쿠르베의 대담함은 한 은밀한 의뢰로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이자 열렬한 누드화 수집가였던 칼릴 셰리프 파샤는 쿠르베에게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여성의 성기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세상의 기원’이다. 이 작품은 얼굴도, 신원도 없이 오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육체만을 담아내며 미술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을 안겼다.그러나 ‘세상의 기원’은 탄생 직후부터 1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소유자들은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해 작품을 꽁꽁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림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전설이 되었다. 기나긴 유배 생활 끝에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문제적 걸작은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공개 이후 ‘세상의 기원’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의 검열 정책에 의해 게시가 금지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50여 년 전 한 화가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