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굽이 만든 오케스트라…전설의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귀환

2025-08-08 13:43

 수십 개의 구두 굽이 무대 바닥을 일제히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탭댄스의 리듬. 이는 단순한 타악이 아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첫 장면부터 시작되는 이 소리는 무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심장 박동처럼 관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쇼비즈니스의 세계를 환상과 현실, 낭만과 냉소, 희망과 고단함이 교차하는 거대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눈이 즐거운 볼거리 이상의 무게감을 품고 있다. “왜 무대는 계속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경쾌하면서도 본질적인 대답을 내놓는 뮤지컬, 그 이름이 바로 ‘브로드웨이 42번가’다.

 

1980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부터 극찬을 받으며 순식간에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뉴욕타임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왜 특별한지를 증명하는 쇼”라고 평하며, 이 작품이 단지 오래된 흥행작이 아닌, 무대 예술의 정수를 담아낸 현대적 고전임을 강조했다. 그 여운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며, 한국에서도 꾸준히 재공연되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지난 7월 10일 막을 올린 이번 시즌은 무려 16번째다. 오는 9월 14일까지 공연되는 이번 시즌은 무대 밖에서 익숙한 인물들이 다수 합류하면서 개막 전부터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가장 주목받는 이름은 줄리안 마쉬 역의 박칼린이다. 뮤지컬 연출자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박칼린은 3년 만에 배우로 무대에 복귀해 쇼비즈니스 세계의 양면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박건형과 양준모 역시 각자의 색깔로 줄리안 마쉬의 카리스마를 구현하며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다.

 

 

 

이번 시즌의 페기 소여 역에는 흥미로운 더블 캐스팅이 이뤄졌다. 전 시즌에서 앙상블로 활약했던 유낙원과 함께, 걸그룹 아이오아이 출신의 신예 최유정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백업에서 스타로’라는 작품 속 테마가 실제 캐스팅과 맞물리면서 공연 자체가 하나의 확장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특히 최유정은 최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연습이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토로했지만, 무대 위에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유낙원 역시 오랜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한층 성숙한 페기 소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신데렐라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음악과 춤, 그리고 이를 감싸는 ‘집단적 리듬’의 힘 때문이다. 빅밴드 재즈와 탭댄스가 결합한 군무는 거대한 퍼커션 앙상블처럼 작동하며, 무대 전체를 하나의 악기로 탈바꿈시킨다. ‘위 아 인 더 머니(We’re in the Money)’, ‘셔플 오프 투 버펄로(Shuffle Off to Buffalo)’, ‘럴러바이 오브 브로드웨이(Lullaby of Broadway)’, ‘포티세컨드 스트리트(42nd Street)’ 등 익숙한 넘버들은 정교한 편곡과 연출을 통해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공연장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럴러바이 오브 브로드웨이’는 쇼비즈니스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외로움을 함께 품은 대표곡으로, 그 이중성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반짝이는 쇼의 외피 속에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고전으로 기능하는 이유는, 무대를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 뒤의 경쟁과 피로,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까지 모두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쇼’로 녹여내며, 오히려 더 강렬한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단지 과거 브로드웨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K팝 산업, OTT 플랫폼, 크리에이터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 등 동시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비추는 거울처럼 읽힌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말한다. 고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생명체라고. 그렇게 이 작품은 오늘도 다시, 수십 개의 구두 굽으로 무대를 두드리며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롭게 연주하고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부천아트벙커B39, 소각장에서 예술 성지로

예술의 열기를 내뿜는 공간으로 변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부터 하루 200톤의 폐기물을 처리하던 이곳은 환경 문제와 자원순환센터 확장으로 인해 2010년 가동을 멈췄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산업 유산은 2014년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고, 2018년 마침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공간의 명칭인 ‘B39’는 소각장의 핵심 시설이었던 벙커의 깊이 39m에서 유래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수직적 공간은 과거 생활 쓰레기가 가득 찼던 곳이지만, 현재는 창의적인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웅장한 무대로 쓰인다. 방문객들은 쓰레기의 반입부터 소각, 정화에 이르는 과거의 공정 라인을 따라 설계된 동선을 이동하며 독특한 공간감을 경험한다.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산업 시설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시민들에게는 휴식을 제공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1층은 시민과 예술가가 공존하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됐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던 넓은 부지는 첨단 음향과 영상 장비를 갖춘 ‘멀티미디어홀’로 변신해 대규모 콘퍼런스와 기획 전시를 소화한다. 소각로가 있던 야외 공간은 벽면을 철거해 하늘을 내부로 끌어들인 ‘에어 갤러리’가 되어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적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유 주방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해 과거 소각장 주변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겪었던 이웃들이 공간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시설의 상층부로 올라가면 소각장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관과 보존구역이 나타난다. 중앙제어실은 소각 설비를 통제하던 과거의 긴박함을 간직한 채 부천시민의 활동을 기록한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4층과 5층의 보존구역은 복잡한 기계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SF 영화나 스릴러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이색적인 풍경은 루이비통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화보 촬영지로 선택받으며 부천아트벙커B39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올해부터 부천시가 직접 운영을 맡으면서 행정적 성과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로컬100’에 2회 연속 선정되며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자산임을 입증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모 사업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고, 오는 10월에는 대규모 미디어아트 전시인 ‘스펙트럴 크로싱스’를 준비하는 등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 ‘부천팔경’으로 선정된 이후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부천아트벙커B39는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거대한 예술 작품 그 자체다. 39m 높이의 천장을 타고 울려 퍼지는 전자음악과 거친 콘크리트 벽면을 수놓는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는 방문객들에게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혐오시설이라는 과거의 굴레를 벗고 미래 지향적인 문화 아지트로 거듭난 이곳은 산업 유산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낡은 소각로에서 피어난 예술의 불꽃은 이제 부천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문화적 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