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준비 끝냈는데…美 셧다운에 발목 잡힌 '이건희 컬렉션'의 눈물

2025-10-30 18:26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이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에 부딪힌 ‘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순회 전시가 결국 개막을 무기한 연기하며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당초 오는 11월 8일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릴 예정이었던 이번 특별전은, 미국 정치권의 대립으로 인한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측은 연방정부의 셧다운으로 박물관이 임시 휴관에 들어갔으며, 공식적인 재개관 이후에야 전시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공식적으로 전달해왔다. 이에 따라 전시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11월 6일로 예정되었던 개막 프리뷰 행사 역시 갑작스럽게 연기되면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세기의 기증품 해외 나들이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수만 점의 문화유산과 미술품 중 정수를 엄선하여 처음으로 해외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한국의 보물: 수집하고, 아끼고, 공유하다’라는 주제 아래,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기증품 200여 점이 워싱턴 D.C.의 심장부에서 한국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알릴 예정이었다. 2021년부터 양국 박물관 간의 긴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2023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이 한국실 지원사업 협약을 체결하며 전시 준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수년간의 노력과 준비가 결실을 보는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외부의 정치적 변수로 인해 모든 일정이 불투명한 안갯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현재 현지에서는 모든 전시 준비가 완료되었음에도 문을 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큐레이터들은 이미 미국 현지로 건너가 모든 유물의 안전한 이동과 배치를 마쳤으며, 전시 공간 구성과 설치 작업 또한 대부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에서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관람객을 맞이할 일만 남겨두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재단인 스미스소니언 산하의 모든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서 속수무책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셧다운과 상관없이 진행할 것이라고는 했지만, 관장 뜻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나”라고 언급한 대목은, 문화 교류에 대한 열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실감하게 한다.

 

단순한 일정 지연을 넘어, 이번 사태가 향후 예정된 순회 전시 전체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후 시카고박물관과 영국박물관 등에서의 순회 전시가 이미 계획되어 있어 일정을 무한정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셧다운 사태가 길어질 경우, 워싱턴 전시 기간이 대폭 축소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는 ‘이건희 컬렉션’을 손꼽아 기다려온 현지 관람객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의 정수를 세계에 알리려던 야심 찬 계획이 시작부터 암초를 만나면서, 향후 순회 전시 일정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이우환부터 한강까지, 아비뇽 점령한 한국 예술

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이자람은 공연 전 관객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했으며, 부채 하나와 몸짓만으로 말의 움직임을 실감 나게 묘사해 객석의 환호를 끌어냈다. 자막 없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현지 관객들의 찬사는 우리 전통 예술이 가진 보편적 호소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현지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이자람의 요청에 따라 관객들이 입으로 직접 바람 소리를 내며 공연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이번 축제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판소리 가락에 맞춰 하나가 된 관객들은 한국 관객보다 더 적극적인 추임새로 무대를 완성했다. 이러한 열광적인 호응 덕분에 이번 축제에 초청된 몇몇 한국 작품들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유럽 유수의 페스티벌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이번 축제의 정점은 아비뇽의 상징인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열린 낭독극 '새'였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성스러운 석벽을 배경으로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낭독했다. 두 배우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가며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읽어 내려갔고, 공연 말미에 한강 작가가 직접 무대에 오르자 2,000여 명의 관객은 깊은 정적 속에서 역사의 비극에 공감했다. 한국 문학의 깊이가 유럽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순간이었다.유럽 연출가들 역시 한국 문학이 지닌 독특한 서사 구조와 시적 표현력에 매료되었다. 이탈리아의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한강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신작을 선보이며, 사적인 고통과 국가적 폭력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작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축제 본부가 운영하는 서점에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강의 소설을 비롯해 조남주, 이문열, 천명관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전면에 배치되어 현지인들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는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 문학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미술과 영화 분야에서도 한국 예술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교황청 내부에서 열린 이우환 작가의 전시 '렐라툼'은 700년 역사의 공간에 고요한 전율을 선사했다. 거대한 석판이 대예배당 바닥을 채운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내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와 함께 봉준호, 박찬욱 등 거장들의 영화가 연달아 상영되면서 아비뇽은 명실상부 한국 예술의 모든 장르가 어우러진 거대한 전시장으로 변모했다.아비뇽 연극제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확인된 한국 예술의 저력은 단순히 일회성 유행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전통 판소리부터 현대 문학, 거장의 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색채가 담긴 콘텐츠들은 유럽 관객들에게 신선한 예술적 자극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축제 기간 내내 이어진 뜨거운 관심은 한국 예술이 세계 문화의 주류 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음을 시사하며, 앞으로 더 넓은 세계 무대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