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통행료 징수… "우호국 러시아는 면제"?

2026-04-24 19:09

 이란 정부가 세계 최대의 원유 수송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통행료 징수 정책을 본격화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특정 친상향 국가들에게는 이러한 비용 지불을 면제해 주는 혜택을 부여하면서, 핵심 해상 교통로를 자국의 외교적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조치의 배경에는 올해 초 발생한 군사적 긴장 상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 직후 해협을 봉쇄했던 이란은 이후 통항을 일부 허용하는 대신 해상 안보 유지라는 명목 아래 막대한 요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최근 주러시아 이란 대사는 언론을 통해 우방국에 대한 비용 면제 조치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부과되는 요금의 규모는 선박이 싣고 있는 화물의 종류와 적재량에 따라 천차만별로 책정되는 구조다. 초대형 원유운반선이 이 해협을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한화로 수십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이는 글로벌 해운 업계에 엄청난 재무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란의 이러한 행보가 단순한 정치적 엄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자금 확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란 의회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해협 통행료 명목으로 거둬들인 자금이 이란 중앙은행의 국고 계좌로 최초 입금되었다고 밝히며, 통행료 징수 시스템이 이미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한국 국적의 선박이나 한국으로 향하는 유조선들이 이란이 규정한 우호국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막대한 통행료를 고스란히 납부해야 한다면, 국내 정유 및 해운 기업들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해상 물류비용의 급격한 증가는 결국 국내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된다. 정유사들의 원유 도입 단가가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와 경유 등 각종 석유 제품의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지며, 나아가 항공 및 화학 등 산업 전반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연쇄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뮤지엄 산 이배 숯으로 빚은 거대한 사유의 장

이배 작가의 개인전 '앙 아땅당(En attendant, 기다리며)'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의 건축 철학인 공간, 예술, 자연을 한국적인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며 본관에서 야외 가든에 이르기까지 전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사유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1989년 프랑스 이주 이후 30여 년간 숯의 물성에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물질적 실험을 넘어선 존재론적 성찰을 보여준다.전시의 핵심 주제인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닌 새로운 생성이 일어나기 전의 능동적인 에너지를 의미한다. 작가에게 숯은 나무가 불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 형태를 잃고 다시 태어난 물질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변화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숯의 형성 과정은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을 이동하며 작품 사이를 걷는 행위를 통해 작가가 응축해온 시간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이는 정지된 감상이 아닌 공간과 신체가 상호작용하며 완성되는 입체적인 예술 경험을 지향한다.뮤지엄 본관 입구에 설치된 대작 '불로부터(Issu du feu)'는 관람객을 압도하는 스케일을 자랑한다. 높이 8m에 달하는 이 작품은 7t의 무게감을 지닌 숯의 덩어리로, 과거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선보였던 작업의 확장된 형태다. 전통적으로 정화와 치유를 상징하는 숯의 의미를 되새기며 전시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자연의 순환 고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로비 공간에서는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붓질' 시리즈 16점이 배치되어, 실내 건축과 외부 풍경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연출한다.전시의 중반부는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해 동양적 사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청조갤러리 1, 2관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심연으로서의 검은색과 비어 있음으로써 충만한 흰색이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특히 3관 '비커밍'에서는 작가의 근원적 정체성인 '농부의 아들'에 주목한 설치 작업이 눈길을 끈다. 경북 청도 작업실의 흙을 직접 옮겨와 구현한 논 설치물과 9m 대형 스크린의 영상은 예술 행위가 결국 땅의 리듬과 자연의 순환이라는 삶의 기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가시화한다.야외 가든으로 이어지는 전시의 대미는 10m 규모의 브론즈 조각 '붓질' 6점이 장식한다. 실내에서 응축되었던 숯의 사유는 탁 트인 야외 공간으로 나와 주변 산세 및 건축물과 호응하며 확장된 풍경을 완성한다. 공기와 빛, 계절의 흐름 속에 놓인 조각들은 자연과 예술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관람객들에게 해방된 감각을 선사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단순한 작품 나열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자기 성찰과 예술의 본질을 찾아가는 물리적 시간의 기록임을 강조하며 관람객들에게 삶의 본질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이번 기획전은 회화와 조각을 넘어 설치와 영상까지 아우르는 압도적인 규모로 이배 예술의 총체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뮤지엄 산은 전시 기간 중 작가와의 대화 및 예술 명상 프로그램 등 관람객들이 작품의 철학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행사를 병행한다. 숯이라는 소멸의 물질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과정은 방문객들에게 기다림의 가치와 존재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깊은 울림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