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단일화 '치킨게임'…투표지 인쇄 전 사퇴 없었다

2026-05-18 20: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의 승패를 가를 후보 단일화 논의가 투표용지 인쇄 시점인 17일을 넘기면서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인쇄 개시 전까지 후보 사퇴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향후 단일화가 성사되더라도 투표용지에는 모든 후보의 이름이 그대로 남게 되어 사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제부터 양보 없는 ‘치킨게임’이 본격화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 진영은 투표용지 인쇄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오는 29일 전까지를 마지막 협상 시한으로 보고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으나, 후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구에서는 범여권 후보들이 단일화의 불씨를 살려가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후보와 진보당 김종훈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을 통해 단일 후보를 선출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일정까지 확정 지었다. 이미 조국혁신당 후보의 지지 선언을 끌어낸 이들은 투표용지 인쇄 시한은 놓쳤지만, 사전투표 전까지 단일화를 완료해 지지층의 결집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야권은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와 무소속 박맹우 후보 간의 논의가 중단되며 난항을 겪고 있다. 박 후보가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야권의 분열 양상은 심화되는 모양새다.

 


경기 평택을 재선거 지역은 범여권 내 후보들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후보들이 같은 날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며 세 대결을 펼친 것은 단일화 논의 이전에 각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자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결집을 호소하고 있는 반면, 조국혁신당은 이번 선거 승리를 발판 삼아 향후 통합 논의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야권의 유의동 후보 측은 범여권의 분열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보수 단일화가 상대 진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산 북구갑 보궐선거 역시 보수 진영의 단일화 요구가 거세지만 실제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민주당 하정우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자 지역 정가와 여권 중진들이 단일화를 압박하고 있음에도,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와 무소속 한동훈 후보는 독자 완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두 후보는 지역 행사에 나란히 참석해 각자의 지지세를 과시하며 보수 적통 경쟁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박 후보는 진정성 있는 손 편지로 민심에 호소하고 있으며, 한 후보는 보수 재건의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차별화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앙당 차원의 전략적 제휴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사이의 공식적인 협상 채널은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양측 모두 단일화의 실익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단일화가 반드시 표 결집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하며, 개혁신당 또한 자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완주하겠다는 입장이 완강하다. 이처럼 거대 양당과 제3지대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전국 주요 격전지에서의 다자 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이제 사전투표 전날인 28일을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야 모두 진영 내 후보 간의 정치적 지향점 차이가 뚜렷해 단일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지만, 선거 결과가 박빙으로 예측되는 지역이 많아 투표 직전까지 후보 사퇴를 종용하는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 후보는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상대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을 이어가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서울시발레단, 토슈즈 벗고 '대나무 숲'에 눕다

절개와 비움의 미학을 대변하는 핵심적인 소재였다. 이러한 동양적 관념을 현대적인 신체의 언어로 치환한 무대가 최근 서울의 중심부에서 펼쳐져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인 신작 '인 더 뱀부 포레스트'는 대나무 숲이라는 익숙한 배경을 빌려 현대인의 내면적 회복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무대는 고난과 혼돈에 매몰되었던 한 인간이 울창한 숲으로 들어서며 시작된다. 쓰러져 있던 주인공이 자연의 리듬과 동화되며 점차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가는 과정은 총 6장에 걸쳐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이번 무대의 핵심은 장르 간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시도에 있었다. 무용수들은 발레의 상징인 토슈즈를 신은 채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무대를 누비며 현대무용의 자유로움과 한국무용 특유의 깊은 호흡을 쏟아냈다. 정형화된 발레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대나무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속성이 무용수들의 몸짓을 통해 시각화되었다.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빛난 무용수들의 투혼도 인상적이었다. 주역의 갑작스러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최목린은 신예답지 않은 장악력으로 무대를 채웠으며, 엄진솔은 남성 군무를 진두지휘하며 성장의 고통과 환희를 몸소 증명해냈다. 특히 고전 발레의 수직적 지향성을 깨고 무게중심을 바닥으로 툭 떨어뜨리는 파격적인 동작들은 거문고의 날카로운 선율과 맞물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무대 위에서 터져 나오는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는 극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 공동체로 만들었다. 일상의 긴장 속에서 얕은 숨을 내쉬며 살아가는 현대 관객들은 무용수들이 내뱉는 깊은 날숨에 동화되는 경험을 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벽을 허문 이 공명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관객 개개인의 숨통을 틔워주는 실질적인 치유의 순간으로 작용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서울시발레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창작 발레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양적인 정서를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동시대의 감각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였다. 신체의 극한을 활용한 예술적 표현과 관객의 정서적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낸 이번 작품은 한국형 컨템퍼러리 발레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며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