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10년, '위험의 외주화' 끝났나
2026-05-29 21:51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한편에는 10년 전 열아홉 청년의 꿈이 멈춰 선 자리가 있다. 2016년 5월 28일, 스크린도어 수리 신고를 받고 홀로 현장에 투입됐던 김군은 열차를 피하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고 당시 그의 가방에서 발견된 것은 고장 난 문을 고칠 연장들과 차마 뜯지 못한 컵라면 하나였다. 끼니조차 챙길 여유 없이 '1시간 이내 출동'이라는 가혹한 속도 경쟁에 내몰렸던 청년의 유품은 효율과 비용만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당시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 부족을 방치한 채 하청업체에 위험한 업무를 떠넘긴 구조적 모순에 있었다.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 사이의 계약에는 지연 배상금 규정이 존재했고,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2인 1조'라는 안전 수칙보다 '신속한 처리'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사고 직후 사측은 노동자 개인의 과실로 책임을 돌리려 했으나, 법원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판시했다. 이 판결은 이후 노동 현장의 안전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드는 법적·사회적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구의역 사고 이후에도 일터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또 다른 김군'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 등 수많은 청년 노동자가 비슷한 구조적 결함 속에서 스러져 갔다.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 안전 수칙을 압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날 행사는 김군을 포함해 산업 현장에서 희생된 모든 노동자를 호명하며 그들의 삶을 기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참석자들은 안전한 노동 환경이 보장될 때까지 감시와 목소리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10년 전 청년의 가방 속에서 나온 컵라면은 이제 단순한 유품을 넘어 노동 존중 사회를 향한 상징이 되었다. 구의역 9-4 승강장의 시계는 10년 전에 멈췄을지 모르지만, 그날의 기억을 품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향한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예술의 열기를 내뿜는 공간으로 변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부터 하루 200톤의 폐기물을 처리하던 이곳은 환경 문제와 자원순환센터 확장으로 인해 2010년 가동을 멈췄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산업 유산은 2014년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극적인 반전을 맞이했고, 2018년 마침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공간의 명칭인 ‘B39’는 소각장의 핵심 시설이었던 벙커의 깊이 39m에서 유래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수직적 공간은 과거 생활 쓰레기가 가득 찼던 곳이지만, 현재는 창의적인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웅장한 무대로 쓰인다. 방문객들은 쓰레기의 반입부터 소각, 정화에 이르는 과거의 공정 라인을 따라 설계된 동선을 이동하며 독특한 공간감을 경험한다.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산업 시설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시민들에게는 휴식을 제공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1층은 시민과 예술가가 공존하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됐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던 넓은 부지는 첨단 음향과 영상 장비를 갖춘 ‘멀티미디어홀’로 변신해 대규모 콘퍼런스와 기획 전시를 소화한다. 소각로가 있던 야외 공간은 벽면을 철거해 하늘을 내부로 끌어들인 ‘에어 갤러리’가 되어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적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유 주방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해 과거 소각장 주변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겪었던 이웃들이 공간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시설의 상층부로 올라가면 소각장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관과 보존구역이 나타난다. 중앙제어실은 소각 설비를 통제하던 과거의 긴박함을 간직한 채 부천시민의 활동을 기록한 작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4층과 5층의 보존구역은 복잡한 기계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어 SF 영화나 스릴러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이색적인 풍경은 루이비통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화보 촬영지로 선택받으며 부천아트벙커B39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올해부터 부천시가 직접 운영을 맡으면서 행정적 성과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로컬100’에 2회 연속 선정되며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자산임을 입증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모 사업을 통해 국비를 확보하고, 오는 10월에는 대규모 미디어아트 전시인 ‘스펙트럴 크로싱스’를 준비하는 등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 ‘부천팔경’으로 선정된 이후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부천아트벙커B39는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입체적으로 교차하는 거대한 예술 작품 그 자체다. 39m 높이의 천장을 타고 울려 퍼지는 전자음악과 거친 콘크리트 벽면을 수놓는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는 방문객들에게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혐오시설이라는 과거의 굴레를 벗고 미래 지향적인 문화 아지트로 거듭난 이곳은 산업 유산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낡은 소각로에서 피어난 예술의 불꽃은 이제 부천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문화적 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