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딛고 핀 '선운사 특별전', 1만 5천 명 홀렸다
2026-06-02 21:56
서울 종로 조계사 경내에 위치한 불교중앙박물관이 전북 고창 선운사의 국보와 보물을 친견하려는 인파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도솔산 선운사-선(禪)에 들고 구름에 눕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선운사 본사와 내소사, 개암사 등 말사의 성보 157점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며 불교 미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특히 지난달 부처님오신날을 기점으로 관람객이 폭증하며 5월 말 기준 누적 관람객 1만 5,000명을 넘어서는 등 박물관 역사상 유례없는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선운사 삼지장(三地藏)’ 보살상의 최초 합동 전시다. 선운사 지장보궁과 도솔암, 참당암에 각각 모셔져 있던 보물급 지장보살상 3점이 사찰 밖으로 나와 나란히 안치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상징으로, 불자들 사이에서는 관음신앙과 함께 가장 두터운 신앙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유리 진열장 너머로 보살상의 세밀한 표정과 조각 기법을 사방에서 감상하며, 평소 사찰 불단 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성보의 진면목을 눈높이에서 마주하고 있다.

사실 이번 전시는 작년 가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로 반년가량 일정이 늦춰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6월 조계종 총무원 청사 화재 당시 연기와 분진이 지하 박물관까지 덮치면서 정화 작업을 위해 휴관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연이 오히려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불교계 최대 명절과 겹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고창의 여러 암자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만날 수 있는 보물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한 번에 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불자들의 발길을 조계사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7월 말까지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종교적 신앙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국보인 내소사 동종의 섬세한 부조와 석조 보살상의 오톨도톨한 질감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번 무대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전시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화마를 견뎌내고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선운사의 보물들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장보살의 자비로운 미소처럼 따뜻한 위로와 평온을 선사하고 있다.
서성민 기자 sung55min@trendnewsreaders.com

날 예술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두 전시가 나란히 열려 눈길을 끈다. 춘천 이상원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도구와 경쟁자-살아있는 존재 증명법’과 성남큐브미술관의 ‘디지털 소장품전: 0과 1 사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이상원미술관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을 통해 새로운 기술 매체를 예술적 도구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예술가를 대체할 경쟁자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획자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감각과 경험이 담긴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는 기술 만능주의 시대에 창작의 근원이 결국 인간의 호흡과 신체성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시도다.전시작 중 최선의 ‘나비’는 인간의 생생한 숨결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작가는 여러 참여자가 캔버스 위 잉크를 자신의 숨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한 사람의 호흡이 멈춘 곳에서 다른 사람의 숨결이 이어지는 방식은 기계적인 복제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인간 공동체의 유대와 생명력을 상징한다. 안산 중앙시장의 한 노인이 자신의 숨결에서 나비를 발견했다는 일화는 작품에 서사적 깊이를 더한다.이우성의 작품 ‘두 번 반복해서 그린 세진이’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2017년 제작 당시에는 지인에 대한 친밀감과 애정을 담은 초상화였으나, 오늘날에는 인간과 그를 닮은 인공지능의 관계를 은유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같은 얼굴을 한 두 인물이 서로 다른 방향을 응시하는 모습은 기술 복제 시대에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시각화한 듯하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변주되는 지점은 인간 예술만이 가진 유연한 소통 능력을 증명한다.성남큐브미술관에서 열리는 ‘0과 1 사이’는 디지털 이미지의 근간인 이진 코드를 화두로 삼아 우리가 매일 접하는 가상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정상현의 ‘데칼코마니’는 현실의 공간을 반복 촬영해 겹쳐 놓음으로써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찰나의 감정과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삶의 궤적을 영상으로 포착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섬세한 시간성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이문희의 ‘이노에스빠스’는 휴대폰 카메라로 기록한 도시와 자연의 파편들을 재구성해 새로운 풍경을 창조한다. 낡은 건물의 외벽이나 바닥의 균열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흔적들은 작가의 시선을 거쳐 독특한 예술적 풍경으로 거듭난다. 이외에도 군중의 흐름을 우주적 관점에서 표현한 이지연의 작품이나 유리판을 겹쳐 착시를 유도하는 임정은의 작업 등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감각적 탐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