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사과도 안 먹힌 '탈벅' 열풍

2026-06-02 23:41

 국내 커피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스타벅스가 1997년 상륙 이후 유례없는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중순 발생한 이벤트 운영 논란이 도화선이 되어 시작된 불매운동은 이제 단순한 항의를 넘어 실질적인 서비스 탈퇴와 환불 행렬로 번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과거의 일시적인 논란들과 달리 충전금 환불과 앱 삭제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달 초부터 본격화된 선불충전금 카드 잔액 환불은 스타벅스의 자금 흐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타벅스의 카드 선불 충전금 규모는 약 4,000억 원대로 추산되는데, 이 중 극히 일부만 환불되더라도 수백억 원의 현금이 빠져나가는 셈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환불을 기다리는 긴 줄은 보이지 않지만, 모바일 앱을 통한 비대면 환불 신청이 쇄도하면서 온라인상에는 환불 완료를 인증하는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신규 실물 카드 판매까지 중단되면서 매출 감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선물하기 시장의 '안전자산'으로 통하던 스타벅스 기프티콘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수년간 카카오톡 선물하기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스타벅스 교환권은 최근 논란 이후 배달 플랫폼 상품권 등에 밀려 순위가 하락했다. 소비자들은 보유하고 있던 기프티콘을 환불받거나 굿즈 구매 후 반품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벅스 지우기'에 동참하고 있다. 이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가졌던 프리미엄 가치와 신뢰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로 해석된다.

 

실제 매장 방문객 감소 수치도 심상치 않다. 점심시간마다 주문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던 주요 상권의 매장들이 최근 눈에 띄게 한산해진 풍경을 보이고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에 따르면 논란 직후 일주일간 스타벅스의 카드 결제 추정액은 전주 대비 26%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 결제액이 단숨에 80억 원 넘게 증발한 셈인데, 이는 온라인상의 분노가 실제 오프라인 소비 위축으로 직결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지난해 발생했던 쿠팡의 탈퇴 행보와 비교하며 향후 추이에 주목하고 있다.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논란 당시 대규모 회원 이탈을 겪었으나, 압도적인 물류 편의성을 무기로 고객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커피 시장은 이커머스와 달리 대체재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 스타벅스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저가 커피부터 대형 프랜차이즈까지 입지가 겹치는 브랜드가 즐비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굳이 논란이 된 브랜드를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벅스의 재기 여부는 브랜드가 제공해 온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을 넘어 세련된 문화와 편안함을 제공한다는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소비자들은 냉정하게 가성비와 대체 브랜드를 찾아 떠나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된 상황에서 스타벅스가 실질적인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번 '탈벅' 사태는 국내 커피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황이준 기자 yijun_i@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화재 딛고 핀 '선운사 특별전', 1만 5천 명 홀렸다

눕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특별전은 선운사 본사와 내소사, 개암사 등 말사의 성보 157점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며 불교 미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특히 지난달 부처님오신날을 기점으로 관람객이 폭증하며 5월 말 기준 누적 관람객 1만 5,000명을 넘어서는 등 박물관 역사상 유례없는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선운사 삼지장(三地藏)’ 보살상의 최초 합동 전시다. 선운사 지장보궁과 도솔암, 참당암에 각각 모셔져 있던 보물급 지장보살상 3점이 사찰 밖으로 나와 나란히 안치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의 상징으로, 불자들 사이에서는 관음신앙과 함께 가장 두터운 신앙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유리 진열장 너머로 보살상의 세밀한 표정과 조각 기법을 사방에서 감상하며, 평소 사찰 불단 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성보의 진면목을 눈높이에서 마주하고 있다.전시품 중에서도 지장보궁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파란만장한 역사를 품고 있어 더욱 주목받는다. 당시 보살상을 소장했던 일본인들이 우환에 시달리다 꿈속 계시를 받고 자발적으로 반환했다는 일화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전시장 내에서 상영 중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서사와 박물관 측의 적극적인 SNS 홍보가 맞물리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도 '반드시 봐야 할 전시'로 입소문이 나며 관람 열기를 더하고 있다.사실 이번 전시는 작년 가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로 반년가량 일정이 늦춰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6월 조계종 총무원 청사 화재 당시 연기와 분진이 지하 박물관까지 덮치면서 정화 작업을 위해 휴관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연이 오히려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불교계 최대 명절과 겹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고창의 여러 암자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만날 수 있는 보물들을 서울 한복판에서 한 번에 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불자들의 발길을 조계사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전시 성사 배경에는 선운사 주지 경우 스님과 교구 스님들의 통 큰 결단이 있었다. 화재로 전시 일정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운사 측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찰의 핵심 성보들을 흔쾌히 서울로 보냈다. 경우 스님은 선운사를 직접 찾지 못하는 대중에게도 성보를 친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불교의 도리라며 문중 스님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심전심의 마음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불상 앞에서 합장하고 큰절을 올리는 경건한 관람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7월 말까지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종교적 신앙을 넘어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국보인 내소사 동종의 섬세한 부조와 석조 보살상의 오톨도톨한 질감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번 무대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지닌 전시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화마를 견뎌내고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선운사의 보물들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장보살의 자비로운 미소처럼 따뜻한 위로와 평온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