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트럼프와 90분 독대…북핵 단계적 해법 제안
2026-06-19 18:07
이재명 대통령이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심도 있는 외교 성과를 직접 공개했다. 1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 나선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현재의 대북 제재와 압박 방식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 개발이 체제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기존의 원론적인 비핵화 요구만으로는 교착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대통령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배려로 마련된 공식 만찬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90분간 독대하며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상황이 중동 분쟁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인 구조임을 설명하며, 북한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특히 북한이 이미 상당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무조건적인 비핵화 대신 북한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제와 안보 협력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성과가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며 미국 군함 10척을 신속히 건조해 줄 수 있는지 타진했고,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하며 호혜적 협력을 약속했다. 또한 주한미군 규모 등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해서도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며 상호 이해를 높였다.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 등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각국 정상들과 직접 소통하며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순방 보고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대내외에 선포한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유일한 대화 상대임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주도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스킨십을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현실적인 지렛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외교 행보가 향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망의 기록을 넘어, 추상과 파격이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 미술사에서 설 자리를 잃은 신고전주의 화가의 고독한 선언이었다. 자살을 수치로 여긴 가족들이 그의 모든 서류와 사진을 불태우면서 고드워드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증발할 뻔했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모더니즘의 그늘에 가려졌던 그의 이름은 7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예상치 못한 계기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드워드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술의 언어가 급격히 전복되던 격변기였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정립하고 뒤샹이 변기를 예술로 선언하던 시절, 고드워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다. 그는 자신의 화실을 고대 유물로 채우고 복식의 직조 방식까지 고증할 정도로 학자적 엄밀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평계의 조롱은 가혹했다. 평단은 그를 '대리석 화파'라 부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아세웠고, 결국 그는 영국 화단의 공식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의 작품 '사포의 시대'나 '폼페이 성문 밖에서'를 보면 그가 추구했던 고전 세계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폼페이의 거리 풍경과 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선 역사적 복원에 가깝다. 고드워드는 자신이 그리는 세계가 실재하는 로마로 이주해 작업을 이어갈 만큼 고전 미학에 투신했다. 하지만 그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대리석의 세계는 거칠고 화려한 현대미술의 질주 앞에서 무력하게 잊혔다. 건강 악화와 외로움 속에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시대와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잊혔던 고드워드를 암흑기에서 건져 올린 것은 1995년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였다. 그가 소더비 경매에서 고드워드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술사는 지워진 화가의 이름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유명인의 안목이 화제가 되자 대중은 처음 마주하는 이 낯선 화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미술관의 권위나 평단의 비평 없이도 대중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고전적 미학의 위로에 반응했고, 이는 고드워드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고드워드의 명성을 살아있을 때보다 더 널리 퍼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된 그의 그림들은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지친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대중은 미술사의 허락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그의 이미지를 보관하고 전파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게티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과거 그를 조롱했던 비평가들의 목소리보다 그의 화폭이 전하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드워드가 두려워했던 피카소의 시대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이 예술의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은 그와 피카소를 동시에 담기에 좁았을지 모르나, 시간의 흐름은 결국 두 거장을 나란히 예술의 전당에 올려놓았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화가의 육신은 사라졌어도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증명하려 했던 고대 세계의 찬란함은 캔버스 위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고전의 가치를 믿었던 한 화가의 고집스러운 투쟁은 세기를 건너뛰어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