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국민께 죄송”…홍명보호 귀국장엔 야유 쏟아져

2026-06-30 09:36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향한 후폭풍이 거세다. 주장 손흥민은 팬들에게 공개 사과했고, 사퇴 의사를 밝힌 홍명보 전 감독과 일부 선수들이 귀국한 인천국제공항에는 새벽 시간에도 수백 명의 팬과 유튜버가 몰려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손흥민은 30일 새벽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한국 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손흥민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현실을 피하고 싶지도 않다”고 적었다.

 

손흥민은 팬들이 느꼈을 실망감을 언급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드러냈다. 그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팬분들의 실망과 상처를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월드컵을 자신에게도 “어린아이의 꿈의 무대”라고 표현하며, 이번 실패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지 못한 점도 사과했다. 손흥민은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시간과 마음, 변함없는 응원과 사랑에 끝내 보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팬분들과 했던 약속은 절대 잊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동료 선수들을 향한 과도한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도 남겼다. 손흥민은 모든 선수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너무 많은 비판과 상처를 주기보다는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같은 날 새벽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대표팀 귀국이 이뤄졌다. 전날 멕시코 현지 훈련장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홍명보 전 감독은 조현우,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 백승호, 김문환, 이강인, 설영우, 오현규 등 일부 선수들과 함께 먼저 귀국했다.

 

입국 시간은 새벽 3~4시대였지만 공항에는 200명 넘는 팬과 유튜버 등이 몰렸다. 홍 전 감독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일부 팬들은 “홍명보 나와”, “홍명보 꺼져” 등을 외쳤고, 선수단이 입국장에 들어서자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다만 야유 속에서도 “이강인 화이팅” 등 일부 선수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홍 전 감독은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앞서 온라인상에 홍 전 감독을 겨냥한 신변 위협성 글이 올라오면서, 이날 공항에는 경찰 기동대 등 160여 명이 배치됐다.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뒤이어 입국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향해 한 팬이 개껌을 던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사전에 공지한 대로 별도의 귀국 행사를 열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이 원정 월드컵을 마치고 공항 귀국 행사 없이 돌아온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이다. 홍 전 감독이 처음 대표팀을 맡았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귀국 행사는 진행된 바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A조에서 1승 2패를 기록하며 조 3위에 머물렀고, 3위 팀 간 순위에서도 밀려 32강 진출권을 얻지 못했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첫 월드컵에서 최종 34위로 대회를 마친 대표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손흥민 등 나머지 선수들은 그룹별로 이동해 7월 1일까지 순차적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문지안 기자 JianMoon@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흑사병 의사 가면, 사실 흑사병 때 없었다?

, 실제로는 그보다 수백 년 뒤인 17세기 근대 프랑스의 의사 샤를 드 로름이 고안한 발명품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이 오염된 공기, 즉 '미아즈마'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가면의 부리 속에 향신료와 말린 꽃을 채워 넣은 것은 악취를 차단해 병을 막으려는 절박한 시도였다. 비록 원인 분석은 틀렸으나, 허브의 살균 성분이 의도치 않게 의사들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는 잘못된 가설이 우연히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한 의학사의 기묘한 장면이다.흑사병이 남긴 무력감은 인류가 인체의 내부 구조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 갈망으로 이어졌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 의학의 메카였던 에든버러에서는 해부학 교육을 위한 시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치는 도굴꾼들이 기승을 부렸고, 급기야 돈을 벌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까지 발생했다.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17명을 살해한 뒤 그 시신을 의대에 팔아넘긴 희대의 연쇄살인마였다.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1832년 연고 없는 시신을 해부용으로 제공할 수 있게 한 '해부법' 제정의 도화선이 되었다.인류의 투쟁은 19세기 콜레라의 습격으로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여전히 나쁜 공기가 범인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지배하던 시절, 의사 존 스노우는 데이터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사망자들의 거주지를 지도에 표시하며 감염 경로를 추적했고, 특정 펌프의 물을 마신 이들이 집중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노우가 당국을 설득해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자 콜레라 확산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보이지 않는 적을 데이터로 가시화한 이 사건은 존 스노우를 '근대 역학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며, 의학이 미신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이처럼 인류가 질병의 공포를 극복해 온 과정은 결코 매끄러운 직선이 아니었다. 때로는 흑사병 의사의 가면처럼 엉뚱한 가설에 의존하기도 했고, 때로는 에든버러의 참혹한 살인 사건처럼 윤리적 비극을 통과하며 제도를 정비했다. 과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합리적인 믿음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서서히 그 형체를 갖춰온 결과물이다. 과거의 의사들이 악취를 막기 위해 부리 가면을 썼던 것처럼, 인류는 각 시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해 왔다.현대 의학이 이룩한 눈부신 성과 역시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새 부리 가면만큼이나 원시적인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류가 멈추지 않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펌프 손잡이를 떼어내 콜레라를 막았던 존 스노우의 통찰은 오늘날 정밀한 역학 조사 시스템으로 계승되었고, 해부법을 통해 정립된 의학 윤리는 현대 의료 체계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오류를 비웃기보다 그들이 남긴 처절한 기록 속에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결국 의학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보이는 실체로 규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미신과 과학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를 지나며 인류는 조금씩 더 정교한 방패를 만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실험과 데이터 분석은 과거 존 스노우가 그렸던 콜레라 지도의 현대적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인류는 여전히 시행착오라는 진흙탕 속에 있지만, 그 발걸음은 분명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한 과학적 확신으로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