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반발한 '선호투표제', 당권 향배 가르나

2026-07-08 23:58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차기 당대표 선출 방식으로 '선호투표제'를 채택하자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선호투표제는 투표자가 후보자의 순위를 매겨 기입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시 하위권 후보의 표를 상위권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정청래 전 대표 측은 즉각 당헌·당규 위반이라며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 전 대표는 8일 정책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수 없듯이 당의 근간인 당헌을 어기며 경선을 치를 수는 없다며 전준위의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친정청래계의 반발은 당 지도부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표출되었다. 문정복, 이성윤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선호투표제가 과반 미달 시 1, 2위 간 재선거를 규정한 당규와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기존 방식대로 결선 투표를 별도로 진행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전준위 측은 선호투표제가 결선 투표의 효율적인 변형 모델일 뿐이며, 추가 행사를 잡아야 하는 행정적 낭비와 선거 과열을 막기 위한 합리적 대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번 논란의 이면에는 각 후보의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선호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지지 기반이 유사한 김민석 전 총리와 송영길 의원 중 한 명이 탈락하더라도 그 표가 나머지 한 명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독자적인 지지층을 보유한 정 전 대표에게는 상당한 위협 요소가 된다. 정 전 대표 측은 결선 투표가 따로 치러질 경우 3위 후보의 표심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선호투표제는 사실상 2, 3위 후보 간의 자동 단일화 효과를 가져온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다른 후보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송영길 의원은 이번 제도가 자신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카드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고, 김민석 전 총리 역시 당의 결정을 존중하며 소모적인 공방을 멈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반면 후발 주자인 고민정 의원은 선호투표제가 4위 이하 후보들의 기회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며 불공정성 의혹을 제기했다. 당권 경쟁이 4파전 이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하위 주자들이 본선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도입했던 제도가 이제는 당내 갈등의 불씨가 된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 대통령은 과거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호투표제가 대선 등 국가적 선거에서도 논의될 가치가 있는 선진적 제도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하지만 당권 주자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특정 계파의 결집을 돕거나 독자 노선을 걷는 후보를 고립시키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의 통합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계파 간의 감정 골을 깊게 만드는 형국이다.

 

민주당 전준위는 법리 해석을 포함한 추가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후 브리핑에서 이견이 있는 부분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최종 경선 룰은 최고위와 당무위 의결을 거쳐야 확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친청계와 비청계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8월 전당대회를 향한 레이스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경선 방식이라는 문턱에서 당내 갈등이 폭발하면서 민주당의 고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물감 대신 전선, 장수익이 그린 기억의 잔상

매체를 화면 위에 배열해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인다. 작가는 붓과 물감 대신 다양한 색상의 전선을 판넬 위에 픽셀처럼 촘촘하게 쌓아 올림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파편화된 기억을 물리적인 실체로 구현해 냈다. 전선 고유의 색감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화면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형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복잡하게 얽힌 선들의 집합체로 변모하며 관람객에게 낯선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장수익 작가에게 전선은 단순한 산업용 자재나 전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넘어선다. 그는 전선을 현대 사회를 부유하는 수많은 정보와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오가는 통로이자 통로 그 자체로 바라본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와 데이터들이 우리 뇌리에 남기는 희미한 잔상들을 작가는 전선의 굵기와 색채, 배열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재구성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을 가시적인 선의 궤적으로 치환하여,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기억들이 현재의 자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전시를 기획한 어울아트센터 측은 이번 작업이 현대인들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방대한 양의 기억들이 현재의 감정과 인식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는 취지다. 관람객들은 전선으로 빚어진 형상들 사이에서 자신의 과거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감정의 조각들을 찾아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캔버스 위에 고착된 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전선이라는 전도체를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기억의 에너지를 체감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전시의 묘미다.작품 속에 투영된 '잔상'은 시간이 흐르며 희석된 기억의 파편들을 상징한다. 정보가 흐르는 전선이 멈춰진 화면에 고정되었을 때 발생하는 시각적 긴장감은 현대인이 느끼는 피로와 안식의 이중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작가는 전선을 엮고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흩어진 감정들을 하나로 응축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형태들을 자화상의 일부로 수용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결과물만큼이나 과정의 수행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예술 철학을 반영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에게는 기억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전시 현장에서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편의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전문 도슨트의 해설 프로그램은 물론, 작품 옆에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감상할 수 있어 작가의 의도를 더욱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다. 예약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문턱 낮은 전시 구성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학 시즌을 맞아 학생들에게는 재료의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예술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장수익 개인전 '잔상의 자화상'은 8월 8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문을 닫는다. 물감의 농담 대신 전선의 밀도로 채워진 갤러리 명봉의 공간은 현대 미술의 지평을 넓히는 실험적인 무대가 될 전망이다. 전선이라는 차가운 소재가 작가의 손길을 거쳐 따뜻한 기억의 매개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이번 여름 대구 시민들에게 특별한 예술적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어울아트센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