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설주·주애와 전승절 공연 관람

2026-07-28 22:31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대규모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대대적인 체제 결속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27일 평양체육관 광장에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상징 종대들의 기념행진의식’이 성대하게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번 행사는 과거 전쟁 당시의 복장과 장비를 재현한 종대들이 행진하며 참전 세대의 공적을 기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이른바 '전승'의 역사를 강조하며 내부적으로는 충성심을 고취하고 외부적으로는 군사적 위세를 과시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행진의 시작은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를 앞세운 친위중대 상징종대가 알렸으며, 뒤이어 근위사단과 내무성, 기계화 마차종대 등이 줄지어 광장을 통과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들이 과거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벌인 작전들을 언급하며 전설적인 위훈을 세운 영웅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과거의 복장을 한 종대들뿐만 아니라 현대적 무장 장비를 갖춘 육해공군 장병들도 대열에 합류해 북한군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주석단에서 장병들의 행진을 지켜보며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격려의 손인사를 건넸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가족 동행이었다. 김 위원장은 부인 이설주 여사와 딸 주애를 데리고 기념공연 관람석에 모습을 드러내며 ‘백두혈통’ 중심의 권력 구조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 속에서 김 위원장 가족은 나란히 앉아 공연을 관람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어린 딸을 공식 석상에 지속적으로 노출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도 체제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세대 간 사상적 계승을 확실히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분석된다.

 

대외적으로는 한미일을 향한 강경한 경고 메시지가 쏟아졌다. 연설자로 나선 노광철 국방상은 주권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들의 행위를 결코 방관하지 않겠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행사해 국가의 발전 이익과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은 최근 강화된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군사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위협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되어 한반도 주변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 및 러시아와의 밀착 관계도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기념공연 중 중국군의 참전을 기리는 영상물과 중국 노래가 연주되었을 때 관람객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또한 주석단에는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들이 초청되어 자리를 함께하며 북·중·러 3각 공조가 건재함을 대내외에 알렸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 속에서 우방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북한의 계산된 행보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전승절 행사를 통해 참전 노병들을 예우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젊은 세대에게 영웅 시대의 정신을 계승할 것을 독려했다. 노동당 고위 간부들과 군 지휘관들이 대거 참석해 김 위원장을 보좌하며 권력 내부의 결속력도 확인시켜 주었다. 행사는 북한의 승리를 주장하는 선전 가요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으며, 북한은 이를 기점으로 하반기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 광장을 가득 메운 행진 대열은 북한이 지향하는 강국 건설의 신념을 과시하며 막을 내렸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돗자리 깔고 보는 연극, 180분의 기다림

무대에 오르는 연극 ‘개기일식 기다리기’는 극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창작집단 음이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손잡고 제작한 이 작품은 375년 만에 찾아오는 우주적 현상을 관객과 배우가 함께 기다린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정해진 자리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수한 시간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김상훈 연출은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현재의 시간을 오롯이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킬링 타임’이 아니라,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힐링 타임’을 선사하고자 한다. 연출가는 성수동의 긴 대기 줄이 하나의 콘텐츠가 된 현상을 목격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다림이 아닌 기다림 그 자체의 소중함을 무대 위에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효율성과 교환 가치에 매몰된 도시인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존재함을 일깨워주는 시도다.작품의 규모는 지난 1월 쇼케이스 당시보다 대폭 확대되어 서사의 깊이를 더했다. 60분이었던 공연 시간은 180분으로 늘어났고, 출연 배우 또한 30명으로 증원되어 극장의 밀도를 높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30명의 배우 중 상당수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관객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관객과 동일한 처지에서 기다림의 과정을 공유하며, 무대와 객석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무너뜨린다. 이는 관객을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공동 참여자로 격상시키는 음이온만의 독창적인 연극 문법이다.제작진은 극장에서 반드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했다. 정인혁 드라마터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대 위 피사체에 집중하기보다 함께하는 시간의 질감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배우들 역시 기존 연극에서 기대하던 극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관객과 마주해야 하는 만큼, 심리적 조급함을 내려놓고 현존하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불친절함은 역설적으로 관객을 예술가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만드는 수평적 소통의 통로가 된다.작품의 모티프가 된 개기일식은 연출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징적 소재다. 미국 텍사스에서 생중계된 개기일식을 친구와 함께 기다리며 느꼈던 축제 같은 분위기와 설렘이 작품의 뼈대가 되었다. 비록 실제 일식 장면을 놓치더라도 함께 기다린 시간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180분의 공연을 지탱하는 철학적 근거가 되었다. 공연의 말미에는 실제 개기일식을 형상화한 장면이 연출되지만, 이는 보상이라기보다 긴 기다림을 함께 견뎌낸 이들이 공유하는 짧은 마침표에 가깝다.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공공극장이 지닌 보수적 형식을 깨는 파격적인 실험이 될 전망이다. 익숙한 서사 구조를 거부하고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무대 장치로 끌어들인 음이온의 시도는 연극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도전적 행보다. 관객들은 돗자리 위에 앉아 배우들과 함께 3시간을 견디며 각자의 내면을 마주하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술적 획득을 약속하지 않는 이 불확실한 기다림이 과연 현대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문화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