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바꿔치기 도운 경찰, ‘향찰’ 유착의 민낯

2026-08-06 21:56

 경찰 총수가 부실 수사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던 그 시각,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조직적인 수사 정보 유출이 자행되고 있었다. 지난달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던 날, 대구에서는 음주 뺑소니를 저지른 현직 경사를 돕기 위해 간부급 경찰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포착되었다. 이들은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피의자가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도록 조력했으며, 이는 경찰 조직 내부의 유착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음이 드러나며 경찰을 향한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대구경찰청 소속 전 모 경사가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고 도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사고 다음 날 수사팀은 CCTV 분석을 통해 전 경사를 피의자로 특정했으나, 이때부터 관할 지구대장이 수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지구대장은 피의자의 부친과 지인 관계임을 내세워 수사 상황을 캐물었고, 담당 수사관은 목격자 유무와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상세히 전달했다. 사실상 경찰 내부의 공조 체계가 범죄 사실을 은폐하고 대응 논리를 마련해 주는 '범죄 조력 네트워크'로 변질된 셈이다.

 


유출된 수사 정보는 즉각 '운전자 바꿔치기'라는 대담한 범죄로 이어졌다. 전 경사의 부인은 사고 사흘 뒤 경찰에 출석해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 하지만 수사팀 내부에서 이미 "남자가 운전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확보됐다"는 정보가 지구대장을 통해 전 경사 측에 전달되자, 이들은 뒤늦게 자백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수사 기관의 핵심 정보가 피의자의 전략 수립에 실시간으로 활용된 이번 사례는 경찰 수사의 공정성이 내부 유착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관련자들을 직위해제하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공정성을 위해 사건을 인접 경찰서로 이송하고 피의자 부친의 주거지까지 압수수색하는 등 뒤늦게 엄정 대응에 나섰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수사 정보 유출 의혹을 처음 포착한 곳이 해당 경찰서 내부였다는 점은, 자정 작용이 작동했다기보다 사안의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한 선제적 조치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독점한 수사권이 내부 비리를 덮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보며 경찰의 비대해진 권한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하반기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역 근무 경찰과 토착 세력 간의 유착을 뜻하는 '향찰' 문제를 언급하며,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 내부에서 사건을 암장하기가 더욱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고 질타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또한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릴 경우 인지 사건들이 사실상 종결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가 수사 구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대통령의 진단은 향후 대대적인 사법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 직속의 내부비리수사대를 신설하고 순환인사제와 상피제를 도입하는 등 고강도 쇄신책을 내놓았으나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명분 아래 비대해진 권력이 내부 통제 시스템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인사 제도 개편만으로 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찰이 진정한 수사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성뿐만 아니라, 외부의 객관적인 감시를 수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대구 경찰 유착 사건은 대한민국 경찰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자화상이자 개혁의 시급성을 알리는 마지막 경고음이다.

 

임시원 기자 Im_Siwon2@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AI 시대의 예술, 안상수가 제안하는 몸의 감각

인전 ‘한글도깨비’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문자가 어떻게 생명력을 지닌 예술적 존재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한글 자모 중 유독 독특한 형태를 지닌 ‘ㅎ(히읗)’을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도 신비로운 존재인 도깨비를 탄생시켰다. 이번 전시는 문자의 네모틀을 깨뜨렸던 안상수체 이후, 그가 지속해온 문자 구조에 대한 탐구가 도달한 새로운 지점을 조명한다.전시의 서막을 여는 첫 번째 섹션에서는 ‘ㅎ’에서 파생된 다채로운 도깨비 연작과 드로잉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가에게 ‘ㅎ’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를 변화시키는 촉매제와 같은 존재다. 세계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독특한 형상은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생명체로 거듭난다. 이어지는 두 번째 섹션 ‘날개’에서는 안상수 조형 세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그가 평생에 걸쳐 구축해온 문자 추상의 궤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특히 이번 경주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3D 홀로그램 작품 ‘천년경주 한글도깨비’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주는 백미다. 평면의 문자가 입체적인 공간 경험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시각화한 이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한글이 가진 공간적 깊이를 체감하게 한다. 마지막 섹션 ‘홀리다’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스탬프와 압인기를 사용해 자신만의 도깨비를 만들어보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는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자와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도록 유도한다.전시장에서 만난 안상수 작가는 이미지와 글자의 뿌리가 결국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지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글자의 전 단계이며, 글자는 오랜 시간 이미지를 응축해온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예술가들이 노니는 가장 즐거운 놀이터로 ‘경계 지점’을 꼽으며, 글자와 이미지 사이를 넘나드는 유희가 자신의 작업 동력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즉각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시대에, 작가는 오히려 이러한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인간의 감각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역설한다.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신체적 경험과 감각은 더욱 중요한 예술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게 작가의 지론이다. 모든 것이 수학적 벡터로 해석되는 디지털 밀림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몸이 느끼는 직접적인 신호와 존재감에 더 몰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글이라는 익숙한 매개체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상상력과 감각을 깨우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주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한글은 이제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역전시 활성화 사업 지원을 통해 마련되어 지역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유진 플레이스씨 대표는 천년의 역사가 축적된 경주에서 한글이 낯선 형상의 생명체로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문자와 이미지, 전통과 현대, 그리고 인간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글의 미래를 묻는다. 관람객들은 안상수가 빚어낸 한글도깨비의 세계를 통해 문자가 가진 경이로운 변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