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급한 트럼프, 북한에 퍼주기식 양보 우려
2026-08-21 21:1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배경에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절박함이 깔려 있다. 현재 미국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란과의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고물가로 인해 민심이 악화된 상태다. 국정 심판 성격이 강한 중간선거를 불과 70여 일 남겨둔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불리한 국내 판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승부수로 북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를 통해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려는 의도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트럼프 대통령의 조급증은 협상의 주도권을 북한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새로운 회담을 갈망하고 있으나, 북한은 오히려 '서두르지 말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이 선거를 앞두고 마음이 급한 미국의 약점을 간파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미 연합훈련 축소라는 선물을 북한에 안겼으며, 비핵화라는 근본적인 목표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북한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미국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북한은 최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하며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 김여정 부장은 담화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 일정이 축소된 것을 조롱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의 도발이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대응 수위를 낮췄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장 고조를 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중간선거라는 국내 정치적 일정에 종속되어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며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시간을 끌 것으로 보인다. 선거 막판 극적인 합의를 노리는 트럼프의 도박이 실질적인 비핵화 성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동맹의 안보를 희생시킨 단기적 정치 쇼에 그칠지는 앞으로 남은 두 달여의 시간에 달려 있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주변 금속판을 녹슬게 하며 기묘한 그림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붓을 들지 않았음에도 시간과 자연의 섭리가 철판 위에 예술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이는 한국 개념미술의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고(故) 우순옥 작가의 대표작 '연기드로잉'이 보여주는 찰나와 영원의 기록이다.성곡미스트관에서 열리고 있는 회고전 '우순옥-예술은 이미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작가의 1980년대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의 유작까지 20여 점의 정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우순옥은 평생 존재와 기억,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탐구해온 예술가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연필과 파스텔 같은 전통적 매체는 물론, 녹슨 철판과 식물, 낡은 가구 등 일상의 사물들은 그의 손을 거쳐 존재를 증명하는 매개체로 변모한다.작가의 예술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우연성'과 '비통제'다. 예술가가 모든 것을 의도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는 사물이 지닌 고유한 시간성과 자연스러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앞서 언급한 연기드로잉처럼, 작가는 무대를 설정할 뿐 실제 그림을 완성하는 주체는 물방울과 수증기, 그리고 흐르는 시간이다. 이러한 태도는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반영한다.전시장 한편의 '따뜻한 벽'은 관람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평범한 흰 벽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체온과 유사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미술관의 불문율을 깨고, 관객은 벽을 만지며 그 안의 생명력을 감각해야 한다. 차갑고 단절된 공간을 상징하는 벽이 임신부의 배처럼 따스한 곡면과 온기를 품음으로써,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고리 안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또 다른 공간에서는 검은 면천 사이로 떠오른 달을 만날 수 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12장의 천 사이를 거닐다 보면, 관객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사적인 방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경험한다.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하며 다진 그의 조형 언어는 이처럼 정적인 미학 속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개념적 지평을 넓히는 데 헌신했다.이번 전시는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관객이 머무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보여준다. 우순옥의 작품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중한 기억의 조각인지를 일깨워준다.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온기와 흔적은 10월 초까지 성곡미술관의 벽과 바닥, 그리고 관객의 마음속에 머물며 예술과 삶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