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인허가권, 구청으로 넘어가나

2026-08-25 23:13

 서울 시내 소규모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의 최종 승인 권한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여당, 서울특별시 간의 주도권 다툼이 첨예화하고 있다. 당정이 500세대 이하 소규모 정비구역의 지정 및 심의 권한을 서울시장에서 관할 구청장으로 이관하는 법 개정에 착수하면서, 수도권 주택 공급 방식과 도시계획 수립 주체를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이번 권한 조정 논의는 청와대에서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용산 부지 개발 및 주택 신속 공급 방안을 검토하던 중, 인허가 권한의 주체를 놓고 대통령과 서울시장 사이에 시각차가 드러났다. 구청으로의 권한 이양이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국정 최고 책임자의 당부와 광역 차원의 통합적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시 당국의 정면 반박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중앙정부는 자치구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며 법 개정에 속도를 냈다. 국무총리가 서울 시내 자치구청장들을 삼청동 공관으로 초청해 개최한 간담회에서 상당수 구청장은 정비구역 권한의 자치구 이양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이어 개최된 고위 당정협의회를 통해 해당 입법안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정책 추진체계가 구체화되었다.

 

광역지자체인 서울시는 당정의 정책 방향에 즉각 반발하며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서울시는 인허가권을 자치구에 넘기더라도 공급 확대 효과는 미미한 반면, 서울 전체의 통일된 광역 도시계획 체계가 무너져 난개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행정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업 지연의 실질적 원인은 자치구 단계의 정비계획 수립 및 검토 지연에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반면 자치구 측은 서울시의 입장에 즉각 재반박하며 당정의 입법 추진에 힘을 실었다. 현행 제도상 서울시의 복잡한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사업 기간이 과도하게 소요되고 있으며, 자치구로 권한이 이관될 경우 인허가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500가구 이하 소규모 정비사업은 난개발 위험이 낮고 여당과 야당 소속 구청장들 사이에서도 널리 형성된 공감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정이 법안 제출을 공식화하고 서울시와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정비사업 인허가권 이양을 둘러싼 입법 대치는 국회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 최대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변윤호 기자 byunbyun_ho@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붓질 몇 번에 오리가 둥둥, 이강소의 찰나

다. 19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그의 조각 실험은 인간의 인위적인 의도를 걷어내고 중력과 속도, 물질의 본성이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질서를 탐구해 왔다. 억지로 다듬지 않은 투박한 흙의 모습은 작가의 손끝을 거쳐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난다.서울 롯데뮤지엄에서 막을 올린 '이강소: 일어나고 사라지는' 전시는 거장의 50년 예술 여정을 150여 점의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그간 회화에 가려져 있던 조각과 판화의 비중을 높여 작가의 다각적인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1973년 명동화랑에서 선보였던 전설적인 퍼포먼스 '소멸'이 53년 만에 재현되어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 놓인 낡은 탁자와 의자는 과거의 복원을 넘어 새로운 시간과 관객을 만나며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낸다.이강소의 작업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비움'과 '무위(無爲)'다. 그는 붓을 잡을 때조차 미리 정해진 형상을 쫓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붓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예기치 못한 신비로운 이미지가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면 속 오리나 배의 형상은 뚜렷한 실체가 아니라 몇 번의 붓질이 남긴 흔적일 뿐이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나의 아성'을 죽이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의문은 그의 설치 작품 '여백'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낙동강변의 갈대를 전시장으로 옮겨온 이 작품은 거울과 관람객의 모습이 투영되며 매 순간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닭의 발자국을 작품으로 삼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요소를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우리가 보는 그대로인지 묻는 거장의 질문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2025년 신작 '바람이 분다' 연작은 노장의 멈추지 않는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화선지와 먹을 활용해 한국화의 형식을 빌려온 이 작업에는 수십 년 전 지인에게 받은 낙관이 찍혀 있다.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붓질이 교차하며 나타남과 사라짐의 미학을 완성한다. 검은 물감 위에 흰색을 덮어 지우고 다시 드러내는 과정은, 끊임없이 의도를 지워내려는 작가의 치열한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매일 새벽 작업실로 향하는 이강소는 여전히 다음 작업을 궁리하는 현역이다. 익숙해진 방식을 버리고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회화와 조각, 사진과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어온 그의 실험은 11월 1일까지 관람객들과 만난다. 거장이 빚어낸 찰나의 흔적들은 우리가 믿어온 실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