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영화의 만남, 그리스 '오디세이 루트' 뜬다

2026-08-26 19:45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빚어낸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가 스크린을 넘어 그리스 관광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영화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인류사적 관심이 증폭되자, 그리스 정부와 지자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화 촬영지와 신화 속 유적을 결합한 대규모 여행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단순한 유적 관람을 넘어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실체를 잇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관광이 예고된 셈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펠로폰네소스주다. 현지 당국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무대와 실제 촬영지를 잇는 '오디세이 루트-호메로스의 펠로폰네소스'라는 테마 여행 코스를 설계 중이다. 관광객들이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고대 성곽과 해변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전용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안내 표지판을 정비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정식 루트 공개를 목표로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중앙정부 역시 이번 영화가 가져온 파급 효과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놀런 감독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이번 작품이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현대의 창의적 영상미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영화 촬영 허가와 제작 지원이 실질적인 국가 홍보와 관광 수입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인한 만큼, 향후 해외 제작사 유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실제로 영화 촬영지로 활용된 네스토르 동굴과 보이도킬리아 해변, 메토니성 등은 개봉 이후 방문객이 급증하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 당국은 단순히 촬영지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파리스와 헬레네의 전승이 깃든 크라나에섬이나 제우스의 신화가 남아 있는 페프노스섬 등 인근의 숨겨진 유적지까지 코스에 포함해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린다는 복안이다. 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역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유럽 현지 여행 업계의 지표도 이러한 열풍을 뒷받침한다. 주요 여행사들의 예약 데이터에 따르면 그리스 본토와 주요 섬 휴양지의 예약 건수는 영화 개봉 이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펠로폰네소스의 관문인 칼라마타 지역의 검색량과 코르푸 패키지 예약률이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놀런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에서는 영화 개봉 전부터 관련 특집 기사가 발간되는 등 그리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다만 이러한 단기적인 흥행이 지속적인 문화 향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영화로 촉발된 호기심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도록 유적지의 전시 방식을 현대화하고 고전학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화가 쏘아 올린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장기적인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연결하는 것이 그리스 정부가 마주한 다음 과제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12년 만의 귀환, 서도호의 '무지갯빛 집' 열린다

의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구현한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막을 올린다. 이번 전시는 8월 27일부터 내년 2월 9일까지 진행되며, 30여 년간 '집'이라는 화두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이동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의 예술 여정을 총망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서도호 예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미공개 초기작부터 2026년 최신작까지 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군이다. 전시장 입구 복도에 설치된 '시드 뱅크'는 작가의 유년 시절 드로잉과 조각, 대학 시절의 실험적인 작업들을 모아놓은 예술적 저장고다. 어린 시절 마당의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품 등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작품들은, 훗날 세계 미술계를 매료시킨 서도호만의 독창적인 시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를 제공한다.전시 공간은 작품의 연대기적 나열보다는 작가의 사유가 확장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3전시실 입구에 놓인 성북동 한옥 대문 재현작 '작은 문'을 지나면, 작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드로잉 200여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수묵화의 거장 서세옥의 아들이기도 한 작가는, 동양적인 선의 미학과 서구적인 조각 기법을 결합해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 언어를 구축해왔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한다.4전시실에서는 서도호의 대표적인 연작인 '러빙/러빙'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종이를 특정 장소에 밀착시킨 뒤 흑연으로 문질러 그 표면의 흔적을 기록하는 이 작업은,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동시에 담아낸다. 작가는 '문지르다'와 '사랑하다'의 발음적 유사성을 활용해 장소에 대한 물리적 기록을 정서적 유대로 승화시켰다. 성북동 한옥을 기록한 작품이 개인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광주극장 사택을 담은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로 시선을 확장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한 이후 뉴욕 MoMA와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여왔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 물리적인 벽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심리적 거주지'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투명한 천으로 지어진 그의 집들은 관람객들에게 집이란 단순히 머무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이동하든 함께 짊어지고 다니는 기억의 덩어리임을 상기시킨다.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3·4·5전시실과 공용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서도호라는 거장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심화되었는지 보여주는 입체적인 지도가 될 것이다. 관람객들은 투명한 천 사이를 거닐며 작가가 살았던 집의 문고리와 벽면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3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500여 점의 작품들은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프로젝트를 하나로 묶어내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