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은 '팀 유럽', 전차는 'K-방산' 택한 이유

2026-07-10 22:40

 한국과 폴란드의 방산 협력이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 단계로 진입했다. 최근 공개된 K2 전차 210대 규모의 3차 실행계약(EC3) 세부 조항에 따르면, 이번 계약의 핵심은 폴란드 현지 조립 생산과 파격적인 핵심 기술 이전이다. 미국 군사 전문 매체 19포티파이브는 폴란드가 한국산 K2 전차를 최대 1000대까지 확보함으로써 서유럽 최강의 기갑 전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3차 물량은 폴란드군의 실전 피드백을 반영한 현지 맞춤형 모델인 K2PL로 구성되어 양국 간 기술 결합의 정점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계약의 가장 큰 특징은 한동안 가동이 멈췄던 폴란드 국영 방산 공장을 한국의 기술로 되살린다는 점이다. 현대로템은 전차 완제품을 넘겨주는 방식에서 탈피해 폴란드 현지 공장에서 라이선스 생산이 가능하도록 생산 라인 구축과 기술 전수를 약속했다. 이는 폴란드가 단순한 수입국을 넘어 유럽 내 전차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도약하려는 의지와 한국의 유연한 협력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폴란드 정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향후 10년간 1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며 침체된 자국 산업 기반의 재건을 노리고 있다.

 


기술 이전의 폭 또한 이례적인 수준이다. 폴란드는 나토 4단계 수준의 독자적인 정비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무장, 통신, 포탑 구동 등 11개 분야의 99개 핵심 구성품에 대한 정비 기술을 한국으로부터 전수받게 된다. 이는 공급국이 정비 주도권을 쥐고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의 방산 관행을 깬 파격적인 제안이다. 한국은 빠른 납기라는 강점에 더해 현지 정비 및 생산 능력을 통째로 이전하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유럽 시장 진입의 가장 큰 장벽인 '현지 산업 보호 논리'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반면 전차 사업의 승전보와 달리 잠수함 사업에서는 '팀 유럽'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폴란드는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대신 스웨덴의 사브를 우선 파트너로 낙점했다. 잠수함은 운용 수명이 40년에 달하는 전략 자산으로, 발트해라는 특수한 지리적 요건과 북유럽 안보 협력 체계가 우선시되는 영역이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에서는 한국이 앞섰으나, 유럽 국가들 간의 정치적 결속과 장기적인 군수 지원망이라는 전략적 요소에서 밀린 것으로 풀이된다.

 


전차와 잠수함 사업에서 나타난 폴란드의 엇갈린 선택은 한국 방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급박한 전력 공백 상황에서 K2 전차는 '빠른 납기'와 '산업 육성'이라는 실리적 카드로 폴란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잠수함처럼 동맹국 간의 긴밀한 상호 운용성과 정치적 유대감이 강조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유럽 내부의 결속력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 방산이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유럽의 안보 생태계에 얼마나 깊숙이 녹아드느냐가 향후 성패의 열쇠임을 시사한다.

 

현대로템은 폴란드를 K2 전차의 유럽 생산 및 정비 허브로 구축해 인근 운용국들의 정비 수요까지 흡수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폴란드가 한국의 고객에서 제조 파트너로 변모함에 따라 유럽 내 K-방산의 공급망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방산이 유럽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토 회원국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현지 산업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한다. 폴란드 현지에서 하역되는 K2 전차는 이제 한국 방산이 유럽의 산업 파트너로 거듭나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고 있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AI 시대 회화의 힘, 권능이 캔버스에 압축한 시간

법한 이 기묘하고도 정겨운 풍경은 현재 서울 성동구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인전 ‘일상의 계절학’을 열고 있는 권능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변한다. 1990년생인 그는 역사적 거장들을 박제된 신화가 아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으로 재해석하며 아시아 미술 시장의 새로운 총아로 떠올랐다. 작가는 위대한 예술가들 역시 작업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일상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권능의 화면은 예술가의 작업실부터 아트페어 전시장, 한강공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공간들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 안에서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주인공들은 현대인들 사이에 섞여 자연스럽게 전시를 관람하거나 산책을 즐긴다. 이러한 발상은 작가가 대학 시절 아트페어에서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를 직접 목격하며 느꼈던 기묘한 동질감에서 시작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적 우상들이 자신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고민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가들의 만남이라는 독창적인 서사로 이어졌다.작가의 붓끝은 서양의 거장들을 넘어 한국의 전통 미학과 대중문화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확장된다. 이번 신작에서는 여의도 한강공원 물가에 앉아 고뇌에 잠긴 반가사유상이나, 신윤복의 풍속화 속에서 튀어나와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모습이 현대적 풍경 속에 녹아든다. 민화 속 호랑이가 길고양이처럼 골목을 서성이고 비틀스와 디즈니 캐릭터가 일상 소품처럼 배치된 화면은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이는 도시를 관찰하며 그 안의 숨겨진 이야기를 포착하는 ‘산보자’로서의 작가적 시선이 투영된 결과물이다.권능 작가가 시장의 뜨거운 선택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감탄을 자아내는 정교한 재현력에 있다. 그는 고흐의 거친 임파스토 기법부터 모딜리아니의 가느다란 인물 묘사, 동양화 특유의 번짐 효과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회화적 숙련도를 뽐낸다.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시대에 그는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선택하며 남긴 시간의 흔적이야말로 회화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라고 믿는다. 캔버스 위에 압축된 작가의 노동과 시간은 디지털 이미지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감을 만들어내며 컬렉터들을 매료시킨다.이미 해외에서는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수년을 기다리는 대기 줄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홍콩,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의 컬렉터들은 물론 미술관과 재단 등 전문 기관들이 앞다투어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홍콩에서의 완판 행진은 권능이라는 이름이 가진 시장 경쟁력을 입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뜰리에 아키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 아트페어에서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국내 개인전 일정이 2년이나 미뤄졌을 만큼, 그는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이번 전시는 거창한 담론보다는 ‘지금 나는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가’라는 소박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작가는 특별함과 평범함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역설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곧 새로운 역사가 되는 무대임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8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권능이 구축한 유쾌한 상상력이 우리 시대의 일상을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