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물가 폭탄'…연방 공무원 표심 잡자 '트럼프의 남자' 무너졌다

2025-11-05 17:47

 미국 정치 지형의 풍향계로 여겨지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의 애비게일 스팬버거 전 연방 하원의원이 공화당의 윈섬 얼-시어스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AP통신은 개표가 34% 진행된 시점에서 스팬버거 후보가 54.5%의 득표율로 45.3%를 얻은 얼-시어스 후보를 여유롭게 앞서며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고 보도했다.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스팬버거 당선인은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구에서 3선을 지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급진적인 좌파 정책과는 선을 긋고 철저한 중도 노선을 견지하며 경제 이슈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전략으로 변덕스러운 버지니아의 표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스팬버거의 핵심 선거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트럼프의 대표 정책인 고율 관세가 결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버지니아 주민들의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잦은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으로 인해 수많은 연방 공무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와 인접해 다수의 연방 공무원들이 거주하는 버지니아의 지역적 특성에 정확히 부합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해고의 칼바람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한 유권자들이 스팬버거의 '민생 안정' 주장에 깊이 공감하며 그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버지니아 선거는 대통령 임기 1년 차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는 '미니 중간선거'로 불리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버지니아는 2008년 이후 대선에서 연달아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강세 주)'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격차를 5.8%포인트까지 좁혔고, 2021년 주지사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는 등 최근에는 민심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로 변모했다. 현 주지사 역시 공화당 소속의 글렌 영킨이라는 점에서 이번 민주당의 승리는 더욱 의미가 크다.

 

스팬버거의 승리는 단순히 버지니아 주정부의 권력 교체를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지역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함께 치러진 뉴욕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조란 맘다니 후보가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뉴저지 주지사 선거 역시 민주당의 미키 셰릴 후보가 공화당 후보와 접전 속에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지배적이다. 이번 '미니 중간선거'의 주요 격전지 세 곳 모두를 민주당이 석권하는 '싹쓸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미국 정치의 무게추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팽민찬 기자 fang-min0615@trendnewsreaders.com

컬쳐라이프

존폐 기로에서 역대 최대로…'예산 0원'의 굴욕 딛고 일어선 서울독립영화제

지도 모른다는 존폐 기로에 섰지만, 영화인들의 끈질긴 노력과 외침 끝에 극적으로 예산이 복원되면서 오히려 역대 최대 규모로 관객을 맞이하게 되는 파란만장한 서사를 쓰게 됐다.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지난 4년간의 평균 출품작 수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다인 1805편이 접수되었고, 상영작 또한 127편으로 역대 가장 많다고 밝히며 한국 독립영화의 뜨거운 현재와 밝은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 자신했다.이처럼 출품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침체를 거듭하는 상업영화 시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상업영화의 투자와 제작이 위축되면서 갈 곳을 잃은 창작 인력들이 독립영화계로 대거 유입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독립영화의 스펙트럼을 한층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의 내밀한 서사부터 사회의 거대 담론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유실된 영화 필름을 각기 다른 네 감독이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복원해 엮어낸 이 실험적인 시도는 독립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하지만 이처럼 풍성한 결실의 이면에는 영화제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예산 제로’ 사태라는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 주최하는 민관 협력의 성격을 지닌 행사로, 매년 영화발전기금을 통해 3~4억 원의 안정적인 정부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작년 말, 정부가 해당 지원 사업 자체를 폐지하면서 예산이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영화계는 이를 ‘독립영화 탄압’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반발하며 예산 복원을 촉구했고, 기나긴 싸움 끝에 올해 7월이 되어서야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4억 원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이처럼 늦게나마 예산이 정상화되면서 영화제는 가까스로 궤도에 올랐지만,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남았다. 예산 문제로 영화제 준비에 심각한 차질을 겪으면서,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이들을 투자 및 제작 시장과 연결하는 산업적 가교 역할을 수행할 프로그램들이 대폭 축소되는 등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측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나아가 아시아 독립영화인들과의 교류를 추진하는 등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